(2015. 9. 15)
사람이 (사람과의 關係에 있어 *서로간*) (*멀었던* 肉體的 關係로부터 親한 關係(사이)로) 트고 살아가는 것은 (모습이) (모두가) 똑같은 거야. 이 (느껴지는) 마음은 +의 모습이다.
(2015. 9. 16)
聖經에는 사람을 쫄게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接近하기 어려운) 難關이 있다. (聖經에서는 +과 무서운 罰에 눌려) 正常的인 마음이나 自己 마음을 찾기 어렵다. (*卽 聖經의 무서운 罰에 눌려 마음이 疲弊된다.* 또) 自己 마음을 잃은 狀態에서 (무서운 罰에 눌려(/눌린 채로 *自身이*) 살려 하다보면) 거짓된 마음을 갖기 쉽게 된다. (또한 現實을 멀리하고 依存心이 생기기 쉽다.) 그러니 차라리 聖經은 接近안하는 것이 낫고, (우리는) 사람에게 잘하는 마음 한 가지만 갖는 게 낫다. 祈禱도 마찬가지다. 靈的으로 만들어주어 사람을 現實을 떠나(고) 異常한 사람이 되게 하며, 依存心이 생기게 해 아무도 없는 데서 스스로 일할 생각을 못 갖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 聖經과 祈禱를 멀리하고 (現實的이 되며), 現實에서 사람에게 잘하라.
(基督敎人의 缺陷, 弊害)
基督敎人 生活을 하면, 現實을 떠나고 依存心이 생기며, 사람에게 나쁘게 하지 못하고 自己 立場을 차리지 못하고 放漫해진다. (큰 +과 聖經에 눌려) 自己 마음을 잃으므로서 그렇게 된다. (卽, 穩全히 *마땅히* 가져야할(/차려야할) 마음(卽, 이것이 +의 (*바른*) 形像임.)을 鼎立(/定立)(/確信)이 안되고 (제대로 된) 自己 ID를 못 가지므로(/가 안되므로) 그렇게 된다.) (하는 일 없이) 모두 다 親하려 하면 안된다. 매섭게 할 때는 매섭게 해야 된다. 自己가 主體性이 되어 살아감도 +을 따름이다. 그러나 罪에 눌려 罰에 눌려 主體的 (責任과 義務를 지는) ID있는 自己 마음을 찾기 어렵다. 祈禱(에 依支함)도 *사람에게* 現實的 마음에 맞게, 현실 있게, 잘 못해주어 (人間間에) 답답함, (제대로) 풀지 못함이 생긴다.
聖經 읽고 祈禱하는 것이 現實을 떠나므로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을 많이 생각하는 것(조차)도 (現實을 무디게(/*現實 行動을* 망치게/버리게)하므로) 옳지 않어.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全部이다.
(사람이 日常生活에서) +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조차가 옳지 않어. (우리에게는) 사람사귀는 것이 +을 아는 것이다. (+을 알지 말고) 사람사귀는 것을 全部로 끝내야 한다.
(2015. 9. 16D)
마음을 게으르게 (하여) 世上살이에 질질 끌려 다니며 살지 말고, 先制的으로 (*自發的으로* +나라를 追求하며 일하여) 살자. 우리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活氣 있게 活動性 있게 (先制的으로 (**自發的으로* 일하여*)) 살면 할 일을 다한 것이다. 先制的으로 (*自發的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살면, 남에게 影響을 적게 받고 自己가 가는 길을 그대로 (自己 삶을) 살 수 있다.
(2015. 9. 19)
밥을 못 먹지도 않고 몸이 아프지도 않은데 그런데도 이렇게 괴로워. 이런 것은 解決할 수(/是正할 수) 있어야 한다. *意味 있고* 마음을 알차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만 생각하는 것은 남는 게(/利得이 되는 게) 아니라, (*헛되게* 마음만(#/自己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게 (人生에서) 남는 거야.(利益 보는 거야.) (또,) 일을 하면 (마음에) 中心이 잡힌다.(/集中이 된다.)
가능한 한 일을 많이 해서 (#*마음에 조용히*#) 평화를 이루라. 맨 땅에 헤딩하는 것 같고, 基本이 自己를(/목숨을) 버리는 일이라서 (일한다는 것 自體가 뭐든지) 일하기 힘들다.(/어렵다.) (일이란 모든 사람에게 (*모두*) 다 이렇다.) 내게 하루 目標가 마음이 괴롭지(/無氣力, 우울에 빠지지) 않게 계속 일거리를 찾아 하는 것이다.
(2015. 9. 25)
나는 사람들보다 못하구, 사람들은 (*(多衆속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게 있으며#/이며) 나를*) 떠나간다는 것. 그 누구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모든 사람보다 낮아져야 한다. 그 한 사람이 그 한 사람이 아니다. 그 한 사람에(게) 모든 社會가 걸쳐져 있다. 그러나 (나를 壓迫했던) 그 (한, 特定) 사람도 떠나고, 모든 사람이 (나를 相關 안되게) 떠난다. 알짜로 말하면 卽, 사는 동안 (사람보다 낮아져) 괴로움을 받으며 모든 사람보다 낮아져야 한다. (그러나 그 (나를 壓迫하던) 사람들도 *다* 떠나간다.)
卽 世上은 基本이 (+을(/옳은 뜻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자기가 낮아지는(/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내가 弱하므로 (世上에서) 괴로움도 당해야 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야 하는) 現實이다. 나는 내가 (낮추므로) 損害봤다고 생각하지만, (나만 생각했었지 어쩌면) 그것이(/내가 낮춤이) 모든 사람에게(/客觀的으로) 公平한 길이리라.
이리하면(/그러면/내가 이렇게 낮추면)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어떤) 外貌에 相關없이 내가 (그들과 *親하게*) 適應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서 (내가) 關係를 가질 수 있는 +의 形像이 보인다.) (外貌가) 어떤 사람하고도 다 親하지 못한다면 다 내 탓이다.
[重複]
사람들이 사람들이 아니라 (#내게#) +과 같은(/+을 代身한) (#外部/外的인#) 世上이다. 내가 모든 사람 앞에 못나고(/無視 당하는 것 같고)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그 사람들도 다/#社會는 (나를 상관없이),#) 사람들은 떠나간다. 알짜로 요점만 따지면, 내 人生에서 (*사람에(/#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自身을 +앞에 卽 다시 말해, 世上에, 사람앞에) 낮춤으로 (조금 괴로웁게) 사는 것이다.
(2015. 9. 27)
어떤 사람에게도, (設令 내게 나쁘게 하는(/#損害 끼치는#) 사람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잘해야 하는 가장 큰 理由는 (#或 나중에#) (그로부터) 物質的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보다, *사람은 (내게)*(/그가) 親舊, 慰勞가 될 수 있기 때문.
(2015. 9. 29)
마음만은 +의 形像(/모습/마음)을 느낄 수 있으나, 몸(/肉身)을 생각하(게 되)면서 肉身的 人間이 된다.(/에 빠지기 쉽다.) 이렇게 되면 안된다. 이렇게 되는 데서 모든 罪가 발생한다. 즉 (다시 말해) 삶의 자세가 肉身에 치우치면 안되고(/(영을 생각하지 않고) 肉身만 생각하면 안되고), 마음의 善함과 넓음, 包容함을 좇아 살아야 된다.
(2015. 10. 3)
+이 우리에게 (對한) 世上에서의 主眼點은(/世上을 創造하신 目的은) 物質(을 求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마음을 보시려는 것이다. 마음을 +답게 가지나(/+의 溫和함과 正義로움과 (#*일하는*#) 主體性에 맞게 가지나) 보시려는 것이다.
(우리의 (받은) 마음의 主體性과 一貫性 (屬性) 때문에,) 우리가 (한번) 俗된 일로 말미암아 迷路에 빠지면, 고리 속에서 俗(되게 卑俗(/오만한 鄙俗))된 삶으로 (*連續的으로 쳇바퀴로*) 돌아가고 (#거기에 빠지고#) 世上을 볼 수 없게 된다.
(2015. 10. 6)
어떻게 하면 (일이 없어)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지#x공허하지x 않고, +이 바라시는 대로 마음을(/溫和하고 正義롭고 (알차고), (일하는) 主體性 있는, 그 마음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사람을 外貌에 相關없이 똑같이 (*보고*) (*+의 形像이 作動하는*) 主體로 본다.
-(生命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物慾을 없이 하고, 마음을 넓게 한다.
내가 이제 무엇을 하던(/世上을 어떻게 만들어 이루어 가던) 내 自由이고 내 責任이다.
外貌의 條件에 따라 어렵게 사는 (나쁜) 條件을 받은 사람들도 있고, 더 잘 사는 (좋은) 條件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外貌 條件이 나쁜 사람을 피하지만, (*실제로 그 外貌 條件에 따라* 삶에 영향도 있지만,) 사람의 本質에는 差異가 없다.(/똑같다.) +은 (잘 살건 어렵게 살건, 外貌에 의해서) 本質的으로 사람에게 差異를 두지 않으신다.
(2015. 10. 9)
俗되다는 것은 自己에게 (싸여) 어두워 客觀을 놓친다는 것을 意味. 自己에게 가려져 (世上을 만드신 x*+이 계신데도*x) +을 보지 못하는 것. (*本 마음에서 벗어나 비뚜르게 나가는 것*). 自己에게 무슨 일이 올지를 끝까지 생각지 않고 便할 대로 생각하는 것(/*을 意味.*)이다.
가만 보면, +은 (몸 혹은 마음에 조금) 괴롭게 하시는 것 말고는 (마음에/高尙함에/거룩함에) *實際* 나쁘게 하시는 것은 없다. +은 모든 것을(/*우리에게* 마음까지) 주신 분이신데, 그 정도 信賴도(/믿음도) 없느냐? +은 (우리가/人間이) 想像할 수 없는 奧妙함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다. (*그 例로, 사람들의 얼굴을 주심으로 精緻한 外貌(가 表現되는 것과)와 天地 만드심을 보라.) *卽, 마음을 주신 +을 믿으라.*
우리를 俗되게 만들고 生命 없음으로 괴롭게 만드는 사람들의 外貌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영적 영역으로 (그 사람과) 가면(/親해지면) 아무렇지도 않다. 生命짧음이 올 수도 있으나 外貌는 누구의 歸責事由도 아니다.(/그 사람 탓도 아니다.) 모든 것을 (종합해) 결과를 보면, 生命 잃음을 당해서도 (사람에게) 마음을 닫나 안닫나 이것이 관건이다.
(나에게 크게 相關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에게 잘못하면 罪가 되는 이유는 (그리하면 우리가 依存하고 사는) 마음이 機能을 안한다. #(*(罪가 되므로) 왜인가에 대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本質 部分을) 더 以上은 잘 모르겠다.#
(2015. 10. 10)
개하구두 잘못되면(/나에게 짖으면) 기분 나쁘다. 사람이 無視를 당하면 마음에 傷處를(/괴로움을) 준다.(/받는다.) 無視를 당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사이가 나빠지는 이유가 외모가 나쁜 것뿐 아니라(/외모가 生命없음을 못참아서 뿐이 아니라), (서로간) 마음에 無視를 당하는 것이 오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싸움이 된다.) 서로 無視를 주는 이것은 사람間에 또, 모든 동물과도 통한다. 이것을 보건대(/이것으로 말미암아) 모두 (餘他 動物까지도) +의 形像을 입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의 (보이지 않는(/않던)) 本質이 무엇인가가 드러난다.(/나온다.) 그리고 그러고 보면, 사람과의 關係는 따로 親한 사람이 없고, 親한 사람간에도 모두 팍팍하다.(/조금도 봐줄 餘地가 없다.) 그러므로 (가까운) 한 사람에게 대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대하거나 (봐줄 餘地가 없고) 팍팍스럽기는 같다.(/마찬가지다.) (*#사람間에 x특히 가까운 사람없이x# 서로 眞摯한 對立이 되는 狀況이 된다.*)
(2015. 10. 13)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그 속에/우리 속에) 계신 +을 透映(/投影)해 보는 것이므로 (外貌가 어떰에 相關없이) (다른 사람을 아무) 흠 없게(/없이) 봐야 한다.(#/맞다./내가 正常的이 된다.#) 그 代身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生命없음(/생명피해 입는 것을) 當하는 것을(/肉體的으로 被害입는 것을) (#x홀로-(사람과 함께)x#) 甘受해야 한다.[三星이미지(/印象분위기)의 核心이며, +의 뜻과 一致]. 상대방이 나쁘더래도 나로 인해(서는) (相對에게 억울하게 나쁘게 하는) 世上에 마이너스的인 일이(/아무에게도 도움 안되는 일이)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 내가 相對에게 잘하면 基本的인 면에서 (내게/世上에) 나쁘게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2015. 10. 13)
(生命이 다해) 몸이 사라지면(/사라질 수도 있으니 #그 때를 對備하면#) 밥도 안 먹고 하던 일도 없어지고 그러니 (*우리가 할 일로* 남는 것은) 사랑을 하는 것뿐이다.
(2015. 10. 16)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平素와 같이 되며), 이 以上 거룩해지지 못하고 이 以上 속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이런 中에도 (+의 뜻에 맞게) 일은 進行이 될 수 있다.
(2015. 10. 17)
똥을 누는 것도 (사람과 (서로간) 動物로 되어 부대끼는 것도) 動物의 本性을 느끼는 것도, +의 (길을 가는 데) 過程이다. 但, 여기에 置心하면(/마음을 두면) 안된다.
(2015. 10. 18)
(‘내 것’, ‘내’가 아닌데도) 마음이(/+의 形像이) 自己 것(/自己)같이 되는 것-이것은 容認해야 한다.(/할 수 밖에 없다.) (살다 보면) 어느새 이렇게 돼 있다. (이래서 화가 날 때는 참지 못하고 화도 난다.) 여기서(/(+의 形像인) 마음이 이렇게 自己 것같이 되는 데서) (自我 ego로서의) +에 대한 罪와 고유의 憤함(/憤恨)이 생긴다. 또, +을 잊고 世上을 추구하는 헛된 일을 하게 된다.
人間은 罪있는 肉身性이 있어야(ex. 먹거나 sex하거나) 生命을 維持할 수 있고 (몸의) 健康을 維持하니 (삶自體가) 矛盾(性)이다.
사람은 異常한 것(만남, 사귐, +의 形像 사귐)을 즐기고 享有하기 때문이지, 實相은 (혼자서 제) 몸이 살다가는 거야. 그러나 이 만남, 사귐은 마음의(/生命의) 糧食으로 없으면 살기 힘들다. 사람이란 (本質은) (남과 떨어진 自己 몸이,) 몸이 (自己 책임, 範圍에서) 살다가는 거야. (남을 바라볼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남과 關係되거나) 相關될 것도 없어. 죽으면(/몸이 다하면) +이 초대하시는 곳으로 (그것이 어디든지) 가야 돼.
다른 사람은 내게 오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내 몸 한계 範圍內에서 살아야 된다. 이것이 基本이다.
(2015. 10. 19)
우리가 사람 사귀는 것은 共通的인 사람으로서 사귀는 거지, 特定한 사람으로 사귀는 게 아니야. 그러니 外貌에 相關없이 어느 모임이나 性格이(만나는 樣相이/사귐의 모습이 *共通的이고*) 똑같다. 모임의 性格이 이럴지라도, (*#*사람속에 자만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루살이*) 풀과 같아,# 永遠히 삶을 保障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이 부르시면 (拒逆하지 못하고) (떠나)가야한다.
모임속의 (사람의) 모습은 바로 +의 모습이다. +의 모습이 이러하다. 사람이 나쁘게 행동할 때는 自己自身도 自己의 共通的 本質(+의 形像)이 뭔지 모르고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2015. 10. 24) (삶의 자세(/보는 눈/識見)의 要約(/요결))[1,2]
1.모임은 모습이 (그 속의 사람이(/은)) 어디가나 똑같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자만하지),# 그 모습은 +의 모습이다.*) 그래도 (사람 속에 自慢하지 못하고) +이 부르시면(/生命을 요구하시면) 가야한다. (*+(의 뜻)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아픔을 겪는) 것이 이 世上의 基本이다. 삶이 (*自身을 낮추어*) 恒常 아픔을 겪는(/괴로운) 것이 基本이고 正常이고 바른 길(을 택하고 있음)이다.*)
2.(*육체적 교류 말고* 남과 마음의 교류가(/도) 필요하지만), (*마음으로는 마음이 들떠 (마음을 통해)* 남에게 #직접#) 갈 것 같지만 가지 못하고, 내 몸 限界 範圍내에서 (자리잡아) 살아야 된다. 남과 사이에 生命을 넘어야 갈 수 있는, 건너지 못할 江이 놓여 있다. 남에게 (마음이 #직접#)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客觀上 오류를(/틀린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함으로써 [삶의 方向]은 이렇게 된다.
-客觀 일을 잘 봐서 狀況파악을 잘하거나(ex. 남이 無視당하는(/섭섭함 당하는) 느낌 안 받게)
-(客觀을 따르고 效率的이 됨으로서) 硏究 等에(/하는 일에서) 最大 能率이 나게.
(2015. 10. 26)
(이때까지 (삶이)) 즐거운 것도 아니고 艱辛히 維持한 것뿐인데, 이와 같은(/이런 (엄청난/슬픈/괴로운)) 시련이 또 (덩달아 연이어) 내게 오느냐.
(2015. 10. 29) (雜)
(사람들 속에 있으며 누구나에게 나임으로서) 이렇게 속 깊이 (가슴 깊이) 들어오는 마음과 진실은, +을 알기 때문에 이런 것이 들어오는 것이다. 태어난 以上 +을 아는 (이)것은 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잘못되면 +을 아는 것이었기 때문에) 罰도 받을 수 있다.
(2015. 11. 2) [重要]
幸福은 (일의) 成果에 있지 않고 (땀 흘리며) 일하는 過程에 있다. (그리고 일하는 中) 活氣있게 하면(/살면) (*할 일이(/것이)*) 다 된 것이다. (사람에게서) 外貌만 보는 것은 成果만 보는 것이나, 사람의 (참된) 사귐은 일하는 過程에 있다.(cf.三星 印象분위기의 一部. 現代 鄭會長 ‘勤勉 (儉素)’, ‘일하는 것이 趣味이다.’와 비슷). 成果가 좋아도 幸福을 느끼지 못하고 모든 일의 意味는 成果보다 일하는 過程中에 있다.
(2015. 11. 5)
사람의 일은 사람이 암만 잘해도 所用없다. (世上은) 일한 것에 상관없이 未解決로 끝난다. (그러니 世上살이가(/現實이) (*評價대로 되지 않고*) 促急하고 힘들다.)
(2015. 11. 8)
죽을 때가 누구에게나 오리니, 그 때는 아무 힘도 없고 아무 가진 것도 없게 된다. 그 때를 對備해서 (平素부터) 그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준비)하라. +께 富饒한 것이 참으로 富饒한 것이다.
사람 만남으로 그에게서 (받은 것이 많다. 그를 통해서) +의 恩惠를 豐盛히 (實際로) 받았다. 그러니 그가 조금 잘못해도(/損害를 줘도) 참아주라.
世上은 남에게 攻擊하지만 않으면 큰일은 생기지 않는다. 일이 발생해도 모든 일이 最小化된다. 또 남 앞에 强한 固執으로 自己를 (밀고나가고) 맞對應하지(/내밀어 추켜세우지) 않으면(/남에게 攻擊性으로 (自己를) 내세우(고 主張하)지 않으면) 큰일은 생기지 않는다. 남에 대한 反感이 들 때(/들고 화가 날 때) +이 내게 주시는 試鍊(/試驗)으로 알고 참으라.
[사람이 언제나 決코 自慢할 수(/自己를 밀어(/추켜)세울 수) 없는 理由 3가지]
1. 죽을 때 卽, 아무 힘도 없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때를 對備해서 (그 때 당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平素부터 준비해야 한다.
2. 남 앞에 自己를 (我執으로 (밀고나가고) 맞대어) 내세우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죄이다.(/나쁜 길로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3. 世上은 사람이 일한 (評價에 相關없고,) 評價에(/成果에) 相關없이 未解決로 끝난다.(/끝나므로 操心해야 한다.)
(2015. 11. 10)
이 世上에는 (箇箇 사람 性格, 모습이라고는) +을 알아서 幸福한 것-이것 한 가지(모습)밖에(는) 없다. (80億 人口) 모든 사람에게 마찬가지다.
사람이 豫定論(이나 四柱 等)에 隸屬되 自由意志를 抛棄하면 卽, 自由意志 즉 +을 빼앗기면 (自己가 가진 것 모두를) 다 빼앗기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重要한 게, 일은 自由意志(를 써서 하는 것) 즉 +이며, 그러므로 일(하는 것)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樂이 있다.
(2015. 11. 11) (贅)
잘못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그를) 審判하지 말고, 本人이 (세상일에서) 自己(/本人) 몫을 擔當하게(/받게) 하고 +의 審判에 맡기라.
(2015. 11. 12)
(한번) 화내면 마음이 쪼그러지고(/좁아지고) 淺薄(/賤薄)해지고 ((마음의) 一貫性과 連續性 때문에) 그 餘波가 繼續 간다.(/가고 影響을 준다.) (그리고 남에 對한다고 (/(自己 속도 包含,) +의 形像에 대해) 화를 냄은 生命을 없애는 것이니, 내가 아무 일이 안된다.) 화낼 때 안낼 수도 없고···. (화내는 것을) 참으면 (내가 바보가 되지만) 혹 모르고 내가 남에게 (過度하게 나가) 被害 입히는 것은 막을 수 있다.
(화내더라도) 남과의 關係를 回復不能의 狀態까지 (感情상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世上에 그냥 남의 말을(/正當한 要求를) 듣는 경우는 없다. 뭔가 强制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一般的으로 恒常 (사람간에) 일할 수 없다. 그냥 말로서 되는 경우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나, 現實에서 모든 사람이 다 마음씨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自己가 마땅히 할 일이더라도 구찮아서 (성의들여) 안한다. (恒常 일이 되려면 각자) 自己 몫으로 주어 뭔가 强制하여야 한다.
(2015. 11. 13)
世上을 (敵이 存在하는) 敵과의 싸움(/다툼)(만)으로 보고, 自己를 높여 (驕慢히) +의 形像을 自己 것으로 (執着)하면 世上일이 解決이 안난다. 그 속에서 머리싸매고 (그 일을) 硏究(努力)해봐야(/따져봐야) 世俗的인 사람들의 헛된 노름일 뿐이다. TV뉴스 보는 것도 解決 안나는 일을 自己를 높이며 헛된 일을 하는 것이고, 新聞 보는 것도 마찬가지며, 世上에 反感을 가지는 反對 세력들은, 世上을 敵으로 보고, 自己를 (執着하여) 높이고, (눈먼 俗된 사람들의 싸움이 끝이 안나는, 그들만의 쳇바퀴 속에서) 똑같이 헛된 일을 하는 것이다.
(2015. 11. 14)
내가 (아무 別 自己 利益主張 못하는, 肝, 쓸개 빠진 것같은) 바보가 되야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높이에 맞는 것 같다. (그래야 客觀上으로도 남과 公平히 맞는지 모른다.) 내가 肉身性을 남앞에 조금도 主張하면 안된다. 或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의 肉身)을 侵害하면 안된다.
(2015. 11. 15)
내가 弱해서 (남과) 싸울 수가 없어. (自己가 弱한 부분이 있음을 알고(/바로 보고), 그러므로 남과 싸우려 하지 마라.) (驕慢히 하지 말고) 恒常 이것을 銘心하라.
우리의 生産은, 무엇을 實際 生産하는 것이 아니라 本質은, 아픔으로 +을 아는 것이 (+이 우리(/사람)에게 要求하시는) 우리의 生産이다. (가만 놔두면) 肉身의 方向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習性이다. 사람을 만나도 肉身대로 보기 쉬우나, 내가 肉身을 떠나는 아픔으로 +을 알고 그럼으로써 사람을 待하고, 무엇을 生産하는 것도 나를 버림으로(/아픔으로 +을 알므로 바른 정신이 되어) 客觀(돌아가는 것)을 잘 봐야, 世上(에서 무슨)일을 (그르치지 않고) 바로(/실제로) 할 수 있다.
(2015. 11. 16) [要訣][$0]
몸이 있기 때문에 아픔은 免할 수가 없다. 肉身은 잡아먹고 남에게 被害를 입히는(/罪짓는) 것이다. 내 肉身이 남(의 肉身)에(게) 被害를 안 입히려면, (내가 아픔을) 참는 수밖에 없다. 또한 몸이 살려면 每事 일하는 忍耐를 必要로 한다. 여러 가지 平常的으로 생긴 外貌뿐 아니라, 몸自體가 肉身으므로 +의 基本에서 떠나 있다. 그러므로 基本인 +께 가기 위해 다 아픔을 주는 것이다. 즉 이래저래 (남과 (關係에) 있어서나 내게 있어서나) 다 아프다.(/아픔을 주는 것이다.)
내가 아픈 것이 (남과의 關係에서) 客觀에 맞다.(/맞는 길이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도 (沓沓하고) 아픈 것이 그것도 (結局 (+의 길(/+의 原形)에서 벗어난) 肉身을) 客觀에 맞추기 위함이다.
오늘도 무슨 아픔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프기는 아프되) +의 뜻을 따르는 아픔이 모든 것을 最小化할 수 있는 方法이다. 앞에서 말한 ‘모든 일이(/幸福은) (일의) 成果에 있지 않고 (땀 흘리며) 일하는 過程에 있다.’함도 아픔을 안고 살아감을 의미하며, 德川家康의 ‘人生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함도 人生에 恒常 아픔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바른 길이다.
누구나 다 죽는다. 죽으면 +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는 동안) 몸이 있으므로 남에게 아픔(/傷處)도 받고, 남에게 주기도 한다. +의 뜻은 世上에서(/人生(길)에서) 아픔으로 +을 아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바로 +을 아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일하는 곳이자 試驗이다.
(2015. 11. 17)
받은 (外貌) 條件이 사람의 本質이 아니라, 아픔으로(/을 겪으며) (+의 形像을 만들기 위해, 自身을 쳐서) 일하는 것에(/일해 가는 데) 사람(누구나)의 本質이 있다.(cf. 三星 이미지(의 精髓)) [要訣]끝.
(2015. 11. 23) [要結]
남과 協助할 수 있고, 내가 客觀의 일을 窮究(/硏究)할 수 있으면 (世上)일은 (할 일이/目標가) 다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몸(位置, 弱함)以上 過度하게 나가는 것이 다 罪이다(罪의 源泉). [要結]끝.
[몸(弱함)以上 過度하게 나가지 말아야 한다.]
남 앞에 自己를 (我執으로 (밀고나가고) 맞대어) 내세우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죄이다.
또한, 남이 몸으로 直接 被害주는 것이 없으면 나도 남에게 그렇게 待해야 한다.
몸以上 過度하게 나가 남을 도와주는 것도 안된다. 나도 몸이 弱하다. 몸以上 過度하게 나가 남을 도와주다가 나도 다친다. (+이 그를 버리시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組織이 (그 일을) 하게 하라. (그래야 效率的으로 된다.) 아무도 몸을 다치지 말아야 한다. 몸을 다치면 (*全般的으로, (世上에서는 무슨) 큰일을*) 아무 일도 못한다. (우리가 몸을 다친다고 세상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큰 配慮보다는 작은 配慮가 모든 사람에게(/社會에) 맞고 社會를 돌아가게 한다. 작은 配慮-이것이 社會를 生命있게 한다. 사람들의 다른 사람에 대한 (구석구석의/여러 가지) 配慮, 이것 때문에 社會가 (이렇게/現在와 같이) 維持되고 있는 것이다.
모임속의 (사람의) 모습이 +의 形像이라고 해서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서,) 짜증이 안나는 게 아니야.(/(前에) 있던 짜증이 다 解消되는 게 아니야.) (그때는 내게 +의 形像이 (나쁜 쪽으로) 固着化되기 때문에 그렇다.)
(2015. 11. 24)
남과 사이에 몸이 걸려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몸이 原因이 되어) 몸의 作用이 恒常 나타난다.) (卽 肉身의 일을 잘못하면 남에게서 攻擊받는다.) 남들과(/사람들이) 마음(/+의 形像)이 있는 것으로도 一致되지만, 動物의(/的) 肉身이 있는 것으로도 一致된다.(/肉身의 일을 하는 것에서 남과 一致될 수도 있다.)
(2015. 11. 26)
이때까지 모든 것을 綜合해 보면, 우리는 사람과의 關係에서 도무지 화를 내면 안된다.(/안되는 것이 +이 우리에게 要求하시는 것 같다.) 화내면 +의 形像에 대해 화내는 것 같아(서) 나만 損害를 본다. 화내면 그 餘波가 後에까지 繼續 간다.
남에게 화 안내려면, 나는 바보가 되는 것을 참아야 한다. (*이때까지) 모든 것을 綜合해 보면(ex. ‘몸以上 過度하게 나가지 말라’ 等) 損害를 봐도 웃는 것이(/남이 攻擊을 해도 善待하는 것이) +이 우리에게 要求하시는 것이다. +이 암만 世上의 惡한 일로 우리를 쳐도, 우리가 착한 마음을 保全해야 하는 것이 +이 우리에게 要求하시는 것이다.
世上에 착한 基本(의) 마음이 있다. 착한 데서 義를 찾는 것이 +이 우리에게 要求하시는 것이다.
(2015. 11. 27)
[내속 +의 形像이 實際로 진실히 變形되고 망가질 때]
1) 화내도(/싸우며 主張하고 執着해도) +의 形像이 망가지고 變形되고 固着化된다.
2) 다른 사람의 낯짝 앞에서 顯著히 (#通常 例規에 벗어난#) 異常한 일을 해도
3) 남에게 너무 無視를 當할 때.
남의 마음속 狀況이 어떻게 돼 있는지 밖에서는 모른다. 各自 自我와(/를 보는 것과) 世上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괴로움이 다르다. (#누구나#) 남의 마음속 狀況까지 (밖에서 *남이* (고쳐주고)) 정리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2015. 12. 1)
((내게 있어) 모든 現實(에서)의 걱정과 不滿의 根本 原因을 따지고 보면, 내게 #모든 일을 할 때#) 生命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內在되어 있어. (내가 아끼려고 하는 바로 그) 生命을 주신 이도 +이시요, 거두신(/거두시는) 이도 +이시라. (너무 걱정만 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픔이 따라오기 때문에 生命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내게 生命을 잃는 일이 (전혀 *조금도*) 없을 것같이 行하(고 내세우)는 것은 驕慢하고 (따라서) 헛짚는 것이고 무대포로 俗되게 살아가는 것이다.
죽는 것이 (무엇이 올지 몰라) 두려울지라도 (사람들의 (交流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람들 속에서 죽으리라. (이것(/그것)은 +의 뜻에 맞으리라.) (내가) 自己를 전혀 내세우지 않으면 (주위 둘러있는) 사람들이 (外貌에 상관없이) 모두 天使 같다.(cf. 순수한 (精髓의) 三星 이미지(와 비슷))
(2015. 12. 4)
자기가 (只今 이때) 일이 없어 괴로운 것 아닌가 恒常 잘 判斷해야 한다. 그럴 때는 (뭔가) 일하라. 生活을 알차게 보내는 것이, 모든 일에 있어 (바른 生活의) 가장 우선적인, 앞에 닥친 關鍵이다. 일하므로 괴로운 것은 나중에 (結果에 대한, 或 天國도 될 수도 있는) 所望이 있지만, 일이 없으므로(/안하므로) 괴로운 것은 괴롭기도 하거니와 나중에 (더 나아가 지옥 밖에) 아무 結果도 바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것이, (우리는 산다고 살지만 日常生活이) 남이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각자 (육체적인)) 뜻없는 生命을 延長하는 것과 같아. 그렇지 않으려면 사람을 잘 사귀고, 그中에 +을 알고 客觀의 (진행의) 결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2015. 12. 6)
[내 삶이 뜻없는 生命을 延長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肉身은 滅할 것이고, (肉身이 永遠한 것같이 하지 않고) 永遠히 있을 것을 追求한다는 意味. (즉 +의 形像을 추구함, 사람에게 잘하는 것). 이 말은 自己가 가진 것을 다 놓고 (내가 아무 일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밖에 存在하고) 계신 +을 본다는 것을 의미. 어디든지 어울릴 수 있게, 갈 수 있게 함.
人間은, (世上은 이렇다 할) 아무 (무슨 固有, 自體) 意味도 없다. (世上에서 오직 (있는) 意味는) +이 +의 形像을 人間에 주신 일뿐이고, (+이 人間에 주신) 自體에 感謝하라.
自己가 (自己에게 있어) 永遠한 것을 追求하는 것이 永遠한 것을 追求하는 것이 아니라, 自己가 하루살이임을(/같음을) 아는 것이 永遠한 것을 追求하는 것이다.
(2015. 12. 9)
다른 사람들은 내가 살기 위해 쓸 것을 빼앗아간다. 그렇거나 또 나를 무시하는 言行으로 내 마음을 짓밟음으로 마음에 傷處를 입힌다.
그들도 살기가 어려워서 내가 쓸 것을 빼앗지만 世上에서 제대로 일 안하고 그러는 境遇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境遇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正確하게 댓가를 치르는 경우이고) 이런 일도 分明 존재하고 이런 (뺏아가는) 일이 一般이다. 그리고 餘裕롭게 (남을) 그냥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自己도 몸이 쫄리는데) 아무도 없다.
내 (쓸) 것을 빼앗고 내게 아프게 하는(/즉 내 生命을 앗아가는) 사람에게도 善待해야 한다.(/하는 것이 世上이다.) 왜냐하면 나는 (世上에서) 弱하고, 또 그렇게 하면(/싸우면) 내 마음이 機能을 안하고 또, 남의 客觀的 事情(/형편)을 나로서는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잘못하다가 남에게 不當하게 (害)하는 結果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世上은 내가 生命을 잃음으로, 아픔으로 +을 아는 것(/사람을 善待하는 것) 이것이다.
(2015. 12. 12)
+의 뜻은(/+이 사람에게 願하시는 것은) +의 뜻을 위하여 生命을 버리는 것이다.(+의 뜻: 이웃을 돕는 것, 다같이 살도록 하는 것). 그렇게 보면 生이 眞摯하고(/한 것이고) 虛無하지 않다. 이에 맞게 平素의 生活(자세)도 肉身 追求의 삶이 되지 않도록 操心(/自制)해야 하는 것이다. +은 +을 위하여 (우리가) 우리의 全部를 드리는가 보시(려)는 것이다.
(2015. 12. 15)
(世上을 無理 없이 살려면 (結局)) 다른 사람은 (무슨 일(/결함, 나쁜 점)이 있어도 (世上에, 다른 사람에)) 아무 問題가 없다고 봐야 돼. 그리고 그러기(/그렇게 맞추기) 위해서는 나는 바보가 돼야 한다. (結局 最終的으로 이렇게 된다./*되고 이렇게 생각하는(/생각할 수 있는) 게 다른 일반 사람에게도 自身 (고유)의 (*가진 바*) 能力과 자산이다.?) 이게 (남과 어긋나지 않는, 世上에 適應하고 生存할 수 있는) 가장 賢明한 方法이다.
(2015. 12. 20)
[(이 모든 잘못된 일을 +이 이렇게 되도록 巧妙히 만드신 것이 아닌가 하고) +을 믿지 못하고 믿음의 不信이 되는 理由]
自己가 (+에 依해, 또는 世上에서) 아플 수 있다는 事實을 멀리하면 그렇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自身인 몸이 弱한 것같이) +(앞의 (낮추는) 바른 마음(기본)자세)에도 맞지 않(아 마음이 機能을 안하)고, 客觀(事實)에도 맞지 않는다.(/않아 일이 틀려버린다.)
(2015. 12. 21) (省略 可能한 글)
사람이 自己 속에 +의 形像의 모습(인 나)과 肉身의 모습(인 나)을 區分할 수 있으면 아주 잘된 것이다.(훌륭한 것이다.)
(2015. 12. 22)
聖經에는 (사람이) 잘못 알기(/받아들이기) 쉬운 말들이 너무나 많다. (일 안해도) 믿음으로만 될 것같이, 奇蹟으로 될 것같이. (#사람으로 (마음만의, 현실을 떠난) 그런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것은 現實을 떠난 (極端的 狀況의) 얘기고, 사람을 망치게 한다.#) 그것은 오히려 (*現實에서*) 誤導하여 反對의 나쁜 길로 가게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世上에서는 生命을 바치고(/바쳐야 하고), 그 다음 (죽은 後)의 일이다. 이 믿음이란 것은, 마음이 꿋꿋하게 (試練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인데 그렇다. +이 왜 이렇게 (誤導되게/뻔히 쉽게 사람이 잘못 받아들이게) 하셨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2015. 12. 24) [1,2](사회생활과 人格과 人生의 核心)
1. 聖經을 읽으면 (마음을 뚜렷하게 (立場을 세워) 차려야 할 때, 사람 앞에서도 +앞이라 생각하고, 敢히 自己) 마음을 (分明히) 차리지 못한다. 사람이 (自己) 마음을(/立場을 뚜렷이) 차리는(/갖는) 것이 罪(의 方向으)로 가(게되)면, 그 사람은 順하게 +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즉 +을 안 믿게 된다. (즉 (#自己의 (#罪의) 문제로 인해) +의 善하심을 안 믿고, +에 不信하게 된다.) 그러나 아예 마음을 (뚜렷이) 차리지 못하면, (사람이) 社會生活을 할 수 없고 社會生活 中에 (껄끄럽게?) 온갖 마찰(/불협화음)이 생긴다. 마음을 (남 앞에 立場을 뚜렷이/分明히) 차리(/가지)면서도, (罪로 가지 않게) 남 앞에(/남과 和合하는) 順한 마음을 갖는 것이, 삶에 있어 어려운 部分이다. 卽 모든 사람이 잘못될 때 (하기/가기) 어려운 點의 (바로 그) 核心(/要諦/骨子)이다.
2. 삶에 있어 (진짜/眞正으로, 核心的) 즐거운 것은, (自己 立場이 뚜렷할 때) +의 形像을 밖에 (객관적으로) 두고, 서로 和合하고 競爭할 때.(앞날을 모르는 채 인간(의 노력)으로(/속에) 살면서.)
(2015. 12. 26)
다른 사람들은 다 世上(이 完全하게 만들어져 存在하는 것)에 比해 (缺陷 있고) 不足한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그렇다.) 世上은 完全할지라도 (箇箇) 사람은 不足하다. 世上이 完全한 것같이(/完全하다고 보는 것 때문에), (또한) 누가 (그러한) 世上을 (완전한 사람이 되어) 쥐고 (있고 存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틀리는(/錯誤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한 것은,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追求한(/求하려고 努力한) 것뿐이다. 누가 하는 일이 結果的으로 +의 나라에 近接하게 갈지 結果가 말해줄 것이다.(/結果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世上에서 살면서, 外貌에 相關없이 누구나, (사람을 알아도 자기 마음에서 (그것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알 수 없고 +을 알 수밖에 없어. 外部에 대해 自己가 (罪 있는)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自體가 罪짓는 생각이다.
(2015. 12. 27)
사랑(받음/느낌) 없이 自己가 일만하는 機械가 되는 것은 좋은 結果를 얻지 못해. 자기 心情도 (사랑 없는 일 때문에 더 더욱, (*地獄에 떨어지듯이* 索莫해지고) 疲弊하게 回復할 수 없이) 망가진다. 이에 대한 解決策은(/어떻게 脫皮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 혼자 살 것이면 外貌가 나쁜 것이, (남과 다른) 내 資産이므로 욕심으로 아쉽고 문제가 되겠지만(/신경 쓰이겠지만), (남과) 더불어 살 것이면 外貌가 나쁜 것이 問題가 되지 않는다.
(2015. 12. 28)
(A) +을 가까이 하면, 憂鬱해지고 성격이 沈滯되고 오히려 (世上에서 남과 (正常的) 關係 못하는) 몹쓸 사람이 된다. 사람을 사귀어야지 +을 사귀면 사람은 亡한다. +을 멀리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 (世上이 살기가 어렵다.) +을 멀리하자니 方向이 안서고, 혼자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고, 가까이 하자니 憂鬱症에 걸리고 (*나를(/活氣찬 自我를) 잃으므로서*) 世上에서 남과의 關係에서 못쓰는 사람이 된다.
(B) 生에서 참조해야 될 基準은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의 視角이 基準이 아니라, 내가 (사람 中에 있는) +을 아는 것이 (내게) 基準이다. 人生에서 그것 이상 *더* 얻을 것이 없다. 그러나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이런 생활이(/이상한(?) 느낌이) 좋으냐?...
(2015. 12. 31)
모든 일의 목표는 그 일을(/에서) 잘하기보다 남들과 어울리는(/함께 하는)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 (ex. 배드민턴, 기타 모든 일에). 사람들, 대상 사람(들)이, 다 다른 외모와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똑같고), (내게) 목표가(/목표 사람(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목표 사람(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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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상 사람이, 다 다른 외모와 상관없이, (내게 사귀는) 목표가(/목표 사람이) (막연하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목표 사람이) (한가지로 一定히 *分明히*) 있다. (즉 이것이 (*社會生活中에*) *건전한* (**共通된 하나된** 사람) 모습, +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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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
<參考> cf.(2015. 12. 28 A)
[사람을 사귀어야지 +을 사귀면 사람은 亡한다.]
사람이 +을 알지 않고 生活하는 것이 (말하자면 結局) 正常 生活로 가게(/모든 것이(/일에서) 正常으로 돌아오게) 되는 理由. (그리하여 普通(/一般) 사람의 生活이 +을 알지 않아도 (生活하는 데) 아무 缺陷(/缺點/瑕疵)이 없는 理由.)
<參考> cf.(2015. 12. 28 B)
(生活에 있어,) 내 생각이 (내게만 있어) 내가 느끼며 (다른 것 안보고) (내 느낌 爲主로) 살게 되는 理由.-사람마다 이것을 自我 (얻은 것으)로(/身分으로) 느낀다. 이때는 自身을 滿足하며, (내 마음을 내가 갖는 것이므로) +을 모르게(/내가 드러나게(/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다른 것(/神을) 안보고) 자신만 보고 (내 느낌 爲主로) 살게 되는 이유.
이때는 溫和하여 罪를 짓지 않으며(/부드러워 나쁜 길로 빠지지 않으며), +을 떠난 삶이지만(/이어서?#) (그래서 一個 人生으로) 더 이루지 못하고 人生이 끝나도 좋다. 이生(/人生)에서 더 以上 얻을 것이 없으며 사람마다 이것이 최고이(어(/마지막 상태(/모습)이어) 더 바랄 것이 없)다.
***************
내 생각이 내게만 있어 (다른 것 안보고) 自身만 보고 살게 되는 이유. 神을 안보고 (自己 생각에 싸여 自己 생각만 보고) 사는 그것이 옳다. 사람마다 이것을 自己 自身으로 본다.
(2016. 1. 4)
人生이 (가도 가도) 持續的으로 똑같고, 별다른 의미도 없고 (먹고 살다 (그 以上 하지 못하고) 끝난다.) (내가/사람이) 뭘 해도 남보다 낫게 되지도 않아. 똑같게 되는 거야.
(2016. 1. 11)
좋은 사람을 만나(려)는 것보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더 좋아.(/낫다.) 그러면서 自身도 즐겁게 되며.(/나아가며.)
(一般) 사람과 잘 지내면 좋은 사람이 부럽지 않다. 거기서 얻는 것을 여기서 다 얻는다.
(2016. 1. 13)
보람 없이 사는 삶은 無意味하다. 그러나 삶의 보람은(/보람 있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규모가 크므로) 每日 꾸준히 (조금씩) 하여야 한다. (그래야 마음도 健全해 진다.)
(2016. 1. 22)
世上에 (自己가 서지 못하는데) 一方的으로 베풂을 받는 關係란(/는) 維持되지 못한다.
(2016. 2. 2)
내가 오늘 만날 사람을 알어. 그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다고 할 根據(/수)가 없다. 다 똑같은 사람이다. 設或 내가 微賤한 사람과 하루를 보내도 이것이 人生이다.
그 (本質上 같은, 주변) 사람들이 (*恒常 내 옆에 있으며* 옆에서) 하는 말이 (내게#) 좋은 말인지, 나를 씹는 말인지 알 수가 없어.(/옆에 (세상살이 만나는 *똑같은*) 사람이 있는 狀況은 내게 즐거운 것인지 괴로운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그러나) 이 만나는 똑같은 사람들에게 正直함으로 對해야 한다.(/바른 政策이다.)
또, 내가 一生동안 할 일도 알어. 이 (本質上 같은 사람, 卽) 만나는 사람들과 조금 하는 일이 그 일이다. 그것이 人生이다.
(2016. 2. 8)
우울하게 찡그리고 있으면 안된다. 더 以上 아무 것도 안된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힘이 들어* 그렇다.) 明朗하지, 경쾌하지(/즐겁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명랑해야 그나마 (或 그中에) 成果를 이룰 수 있을 뿐이다. 明朗하지(/그것이 즐겁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한다.(/안하기로 한다.) 모두(硏究, 피아노, 한자) 이제 와서 活潑하게 輕快하게 사는 것이 아니면 다 (더 以上*) 意味가 없다.
또한 (삶의 무게에 대해 쭈그리고 있지 않고,) 活氣 있고 活動性 있게 살려면, 自己를 버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16. 2. 10)
(外貌로는 사람을 (다르다고/다른 사람으로서) 區分하지 않는다.)
-얼굴이 나쁜 사람은 그 사람이 罪人은 아닌데, 잘못하면 罪에 빠지기 쉬워.
-사람에(/마음 갖는 데) 있어 (나와 동일한 것(/마음)인) 마음의 比重(/比率)이 外貌의 比重보다 훨씬 크다. (外貌에 相關없이 (사람이) 다 같다는 얘기(/것).) *그러나 내 육신을 죽게 하는 態度으로 나를 對하는 사람에게는 基本 마음이 그와 같을 지라도 대응하기 괴롭다.*
(2016. 2. 12)
世上을 現在와 같이 維持하는 것은(/維持되는 理由는) 各自의 차분한 生業 從事이다. 世上을 쓸모있게 하는 것은 차분한 實行이다. 그러므로 北核事態에도 가장 效果적인 對應이 各自의 차분한(/묵묵한) 生業 從事이다.
世上에(/우리에게) 生命을 주신 이도 +이시오, 또한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신 이도 +이시다. 兩者를 같이 주셨다. +의 뜻은 +의 뜻을 위하여 自身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른 모습을 찾는 것이다.*)
時間을 괴롭게 보내지 않고, 뭔가 알차게 (生活을) 보내려면, 뭔가 (작은 일이라도 마음을 쓸 수 있는) 일을 하여야 한다. *괴로움 中에 時間을 괴롭게 空虛하게 보내는 괴로움이 크다. 또한 이렇게 時間을 (스스로) 일하며 보낼 수 있으면, 사람사이에서도 (앞 길(/갈 길)이 막히지 않고), 나아갈 길이 보인다.*
(살다보면)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구하는 일 外에는 달리 目標될(/目標할 수 있는) 게 없다. (이것은 (우리가 世上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理想的인 最高의 目標이며, 마음을 바르게 잡아주며, 또 내가 弱하므로 이것 外에는 삶의 目標가 없다. 또한, 우리에게 몸과 모든 것을 주셨으므로, +에 대한 目標를 갖고 +께 돌아가는 게 當然하다.) 그러나 *+을 求하려면 (肉身의) 慾心을 버려야만 한다.* 또한 +나라를 求하는 일은 몸을 다 버려야 한다. (그러니) 몸이 부서지도록 버리는 일이니, +나라를 求하는 일은(/求하려 해도) 實際上에는 荒凉(,허전#)하다.
+나라를 求(/實現)하려면, 뭔가 사람들의 줄기가(/基準이) 되는 일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이 모여야 무슨 일이든 (+나라도) (일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줄기가 되는 일을 하기란 (只今의) 내게 難望하다.)
(2016. 2. 13)
내 (마음) 狀況에 相關없이 다른 사람들은 변함이 없다. 내가 (*내게 마음속에*) 自信이 있건 없건, 아프건 안 아프건 外部 사람들은 변함이 없고 世上은 그대로 있다.(/*흘러* 進行돼 간다.) 내 마음 때문에 世上을 틀리게 보는 것은 錯誤하는 것이다.
(2016. 2. 14)
+(나라)를 위하는 삶은 自己를 다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 사람이 相關이(/關係될 게) 없다. *즉 사람이 (내게 관계)없는 것 같아서,* 사람을 介意치 않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報償을 바라지 않는다.)(cf. 三星 이미지). 眞正 +나라를 위하고 사람을 위하려면 그래야 한다. 또한 그러한 삶은 내가 어려울 때도 아무 도움이 없다는 태도(/받아들임)이다.
(2016. 2. 17)
사람은 人格的으로(/+의 形像的으로, 價値的으로) (認定받고) 살 수 없으면, 즉 肉身的으로(/下等 動物的으로) (남에게* 待遇받고) 살면 그것은 아픔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自己 잇속을 차리고, 내게 肉身의 關係만을 追求하는(/次元으로 待하는) 사람들이 있다.
資源이 限定돼 있으므로 (세상에서*) 모두에게 다 떠받들고 人格的 待遇를 해줄 수는 없다. *몸의 쓸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몸을 가진 사람에게 몸의 살 것을 마련하지 않고(/몸의 살 준비를 하지 않고), 人格的 待遇를 해주기란 不可能하다. (*몸이 있으므로 (즉 동물 차원의) 몸이 (純粹 동물차원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純粹 동물차원 內에서 *스스로* 쓸 것을 마련해야) 그 다음에라야 생명이 있고 문화와 (살*) 여유가 있다.*) (*우리에게, 動物의 生命(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것#)이 于先이지, 人格이 恒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몸의 살 것을 마련하는 것은 (그 속에서) 儼然한 肉身의 (서로간 生存의) 競爭(의 산물)이다. *이것이 (動物 몸을 가진 사람에게) 世上 밑바닥의 (돌아가는) 근본원리이다.* **그러므로 肉身만의 狀態의 競爭에서 살아남아야, 그 다음에 (卽 客觀的인 (平和의*) 與件이 갖춰진 다음에라야, (*그도 살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그에게) 人格的 待遇를 해줄 수 있다.(/사랑을 베풀 수 있다.)** 肉身의 競爭에서 지면 죽을 수도 있다.(/淘汰되도 뭐라 말 못한다.)
[重複]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리 문화의 世界에서도 自身의 動物의 일을 解決해야 하거나, 自身의 動物 일에 대한 立場(卽 自身을 버림)을 세워야 한다. 그 다음에라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이 動物의 일을 解決하는 것은 동물 속에서 (*스스로 儼然히*) 原初的 生存競爭의 차원이다. 生活의 모든 일에, 모두에게 이러한 基準을 세워야 한다.(/맞다.)
(2016. 2. 21)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태어났지만, 우리가 사람 만남으로 지식을 얻고 나를 아는데(/평가하(/를 내리)는데), 旣存에 아무 지식이 없어도 이것이 맞다.(‘사람 알 때 드는 나’가 旣存에 아무 지식이 없어도 맞다.(/맞는 바른 모습이다.))**
내가 아픔을 겪음을 받아들이는 것(/아픔을 겪는 理由, 正當性을 (*내게 拒否하지 않고*) 理解하는 것)-여기서부터 모든 지식은 始作된다. 이것이 지식의 根本(/原流)이다. 旣存에 아무 지식이 없어도 여기서(부터) 바른 지식의 基盤(/基礎)이다.
[아픔을 겪는 理由, 正當性]- +의 뜻을 위하여, 卽 +을 알기 위하여 임. 우리가 自身을, 됨됨이를 (根本부터도) 어떻게 가져야 될지 알 수 없는(/理解하지 못하는) 人間이지만(/으로서), +이 주신(/願하시는) 바른 나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임.
그러나 일이 없을 때는 (무엇을 (合理的으로) 對處할 氣力(/조금 힘)도 있기 前에,) 쓰러질 것 같고 空虛하고 괴로울 뿐이다.
(2016. 2. 22) [重要, 要訣/要結][$0]
(잘 나갈 때는/걱정 없고 일이 잘 될 때는) (利己的,) 제 몸만 위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때는 그래도 될 것같이(/살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두운 마음이고 世上일에서 틀리며 失敗한다. (世上의) 모든 紛亂이 이 작은 利己的 마음에서 생긴다. 왜냐 나보다(/내 生命보다) 더 큰 것이 外部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까먹은/*못하고 철부지 짓을 한*) 것이다. 죽어서는 +이 계시고 내 生命을 바치는 (아픔으로 自身(生命)을 버려) 바른 마음을 갖기를 願하시며, 이 客觀 世上에서는 내 生命은 내 몸까지이며, 내 몸 밖 (世上)은 내 生命을 떠난, (나보다 큰) 곳이다. (제 몸만 생각하는) 利己的 어두운 마음이 世上일에서 틀리는 理由는, 내 몸 範圍(까지)만 (어리석게) 생각하고 (내 몸 밖의) 나보다 더 큰 것에 맞추지(/注意하지/에서 오는 것을 管理하지) 않으므로 이다.
잘못된 때는 내 生命이 없어져도 存在하는 것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내 生命을 떠난 곳에도 밖에 分明히 뭔가 存在한다. 그러니 外部를 크게 보고 이에* 謙遜하라. 이 世上에서는 (내 生命을 떠난 곳인) 外部에서, 卽 다른 사람과 (外部) 世界에서 隨時로 내게 (여러 일에/여러 가지로) 影響을 미쳐온다. (내 몸 밖의) 나보다 더 큰 것에 注意하(고 自身이 弱함을 깨닫고 對應하)지 않으면 나는 亡하는 것이다.
그러나 人格이 無視당할 때, 또 自己 肉身의 生命에 被害(/壓迫)가 올 때, (自身은 弱하고 밖은) 큰 外部이지만 남에게 (무모하게) 對抗하고* 싸우게(/反撥하게) 된다. *實相 (우리 본질이*) 마음뿐이(고 아무 것도 없으)나 過度하게 싸우는* 이것이 (+이 만드신 世上 內에) 모든 싸움, 鬪爭(, 紛亂)의 原因이고 (不幸을 맞고(/불러오고) 일이 안되는) 核心이다. (*마음만을 좇아(/쫓아*), 自己보다 더 큰 것이 있음을 모르고*) 끝까지 鬪爭하는 것과, 그래도 (위에서 말한(대로 自身이 弱하디 弱한) 狀況이므로,) (그렇게 하지 말고 調節하여, (작은 態度이지만)) 利己的 마음을 버리고 어떻게 調節해야 될지 앞에서 썼다. 世上 모든 紛亂과 싸움의 原因은 (卽 世上 모든 不幸의 原因은) 이 작은, 제 몸만 생각하고, 自己보다 더 큰 것이 自己 몸 밖에 있음을 모르고 傲慢한 데서(/작은 마음씨에서) 始作한다. 卽 또한 自己가 弱한 것을 까먹고, (肉身에 被害를 주는) 相對方에게 對抗한다고, (제 마음을 過度히 붙잡고(/依存해*) 나아가) 마음으로 뻗대는 데서 모든 (잘못과#) 不幸이 생긴다.
(2016. 3. 3)(連續)
모든 일은 내가 弱하므로, 감정으로, 마음으로 뻗대어, 直接 해결하려 하면 안되고,(/그리하면 나도 亡한다.) 좀 더딜지라도 客觀(돌아감)이 처리하게 (그대로*) 놔둬야 한다. 그것이 가장 옳은 길이다. 卽 우리는 모두 客觀(世界, 돌아감)에 服從할 뿐, +만 審判者가 되시느니라. 우리가 *他人의* 審判者가 되려 하면 망한다. *客觀 돌아감이 바른 審判이다. 모든 人間을 (客觀 (世界) 돌아감이(/에 의해)) 審判한다.*
우리는 卽 다시 말해, 物理的인 것들(이 客觀(世界) 原理에 의해 (正確하게) 움직이는(/돌아가는) 것)에 服從할 뿐, (卽 客觀에 따르고 服從할 뿐*), +만 審判者가 되시느니라.
(全體 物理的인 世界에서) 全體的인(/全體的으로) 몸이 돌아가는(/움직이는) 것에 服從할 뿐. 몸이 살아가는 (樣式, 形態,) 過程들, 몸이 弱한 것들에 服從할 뿐. *全體內에서, 全體的으로 몸이 維持하기 위한 그 길에서 (내 몸 內에서, 또 밖 世界에서) 服從하고 따라갈 뿐.* 客觀 돌아가는 限界와 威嚴과 順化(/醇化)에 服從할 뿐.
몸이 살아가는 限界와 過程과 結末에 注意하라. 몸(의 가는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몸이 곧 끝나는 것이므로 (卽 時間과 모든 것이 限定된, 今方 끝나는 것이므로,) *살아가는* 한시도 時間을 浪費할 수 없다. *몸이 嚴하게 限定되게 定해져 있으며, 今方 끝나 버린다.*
우리가 살려면 몸의 일에서 解決하여야 한다. (우리 일은) 몸이 살아야 해결이 난다. 그러니 客觀 돌아감 卽, 몸이 사는 일에(/일을 하도록) 平生토록 集中하고 時間을 아껴 努力하라. 그것이 +을 찾는 길이다.(/과 맞다.) 왜냐 그것이 (謙遜한 것이며) 自身을 버리는 길이므로 이다. 이것이 (바로,) 바로 +을 찾는 길이다.
(*그러니 여기 目標를 두면 (사람에 덜 左右되고,) 사람에 대한 (交流가 적어도) 외로움에서 補償되고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
(2016. 3. 5)(連續)
우리는 우리 마음이 옳은 (마음이고 틀린 것이 없는) 것 같으나, 그래서 뻗대어 나아가(려 하)나, 客觀(世界) 原理에 服從하는 게 바른 것이고, (自身을 버리는) 謙遜한 마음이다.
왜 世上에 問題가 있느냐 하면(/+이 보시는 바 世上의 問題(의 原因)은), (마음으로(/마음이) 옳은 것같이 하고(/여기고),) 客觀 世界(/秩序) 움직이는 것에 服從하지(/따르지) 않기 때문. *客觀(世界)에 服從하는(/따르는) 것은 自身을 버리는 것이 (된)다. 그리고 客觀(/이)에 따라 (가다 몸이) 안될 때는 죽음도 (조용히/할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世上의 모든 問題(의 原因)은(ex./一例로 政黨輩들의 싸움) (마음으로 옳은 것같이 하고(/내세우(기만 하)고)) 客觀(돌아감)에 服從치 않기 때문.(/實際 몸으로 일은 안하기 때문이다.) 客觀(돌아감)에 服從하는 것이었더면 싸우지 않고 벌써 뭔가 몸으로 (스스로*) (몸의 弱함과 限界를 알고) 일하였으리라.(直接 일은 못하더라도, 最小限 相互 協助하게 하였으리라.) 客觀(돌아감)에 服從함은 謙遜하고 自己를 버리는 것(/길)이다.
(2016. 3. 14)(連續)
(自身이) 즐겁지 않음도 客觀에 服從치 않(고 있)음이다. 찌푸리고 있으면서, 柔軟하게 낮추어 (움직여 自身을 外部에) 對應(/適應)하지 않음으로 이다. 그래서 (*客觀에 服從치 않(고 있)음이 되며 그래서*) (즐겁지 않으면) 남과 부딪치고 일이 안된다.(/안되는 理由이다.)
(2016. 3. 23)(追加)
客觀에 服從한다는 것은, (*客觀에 따르다 보면(/따르기 위해)*) 몸이 남과 따로 (홀로)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몸이 가는 길대로 따라 가므로* 홀로) 떠나간다는 것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恒常 (自身을 낮추어 *謙遜히 (行)하고*) 操心하라.
[重要, 要訣/要結]끝.
(2016. 2. 24)
그리하여 사람을 外貌로 볼 것이 없고 사람이 다 같으며, 外部에 나보다 더 큰 것이 있음을 알고 이렇게 사람사이에 즐겁게 (가진 것 없이 和睦하게(/和合하게) 지내며) 있다가(/살다가)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가진 것 없는 被造物* 사람에게) 許與하신(/주신) 삶(/분깃)이다.
(2016. 3. 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나라에 目標를 갖고 (지혜롭게/가볍게/산뜻하게) 살아야 함에도, 그러나 되는 일이 없고 肉身만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이 (자꾸만 失望되고/恒時) 쳐지고 무뎌진다.(/무뎌지고 退步한다.) 人生이 할 수 없이 이렇게 끝나도 좋다. 그러나 (할려고/+나라(를 위한) 일을 이루려고) 努力은 하리라.
이렇게 (肉身만 느껴지고) 일이 안될 때에는, (사람이/누가) 일을 해도 앞이(/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데도* 이것을 넘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勇氣있는 사람이다.
(2016. 3. 3)
(世上일이 이렇다.) 일은 되지 않고, 肉身만 느껴진다. 또 (그 中에서) 참아야 돼.
다른 사람하고는 싸울 수가 없어. 無條件 참아야 된다. 내가 弱하기 때문에.
우리가 (日常 中에#) 참아야 되는 경우는, 자신의 (남에게 손해 끼치는*) 동물성을 제어해야 될 때, 또 남이 육신적으로(/物理的으로) (實際/큰) 피해를 안주고 마음으로만 기분 나쁘게 할(/언짢게 할) 때는 (그냥) 참아야 한다. *또 動物이므로 (몸이 사는) 動物일을 忍耐로 해가며 살아야 한다.*
(2016. 3. 19) (贅言:군더더기 말)
(<목숨을 버리는 것>이 +의 뜻인 것에 대해)
(사람은 이상하게도) 肉身에 +의 形像이 붙어있다. (그러므로 肉身이 相互(/남과) 싸우다 보면) 肉身이 죽을 때 +의 形像도 죽게 된다. (타인에게서(/의)) +의 形像이 죽지 않으려면(/+의 形像을 아끼려면) 내가(/내 肉身이) 죽어야 한다. +의 뜻이 이것이다.(/여기에 있다.)
(2016. 3. 19) [2차 擴大要約$]
우리가 外貌가 (좋거나 나쁘거나 외모가) 各其 다른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 外貌 사람에 대해 (그 外貌의 완전히 固有한 사람으로 보고 그 外貌가진 사람에게 따로 맞춰 *外貌대로 各其 달리(/따로)*) 사람을 사귀는 것이 아니라, 이(/사람만남) 中에서 (공통된, 온전한 正의 모습인) +을 찾는 것이다.
(2016. 3. 21)
[主人이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쓰는 사람이 없어 놀고 있다가 한 時間만 일한 사람에게 同一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준 葡萄園 품군의 譬喩] (마20:1-16)
할 수 없어 못하는 그런 사람(에게도 돌아보는), 거기까지도 마음을 쓰라. (나타난 肉身의 結果만 놓고 보지(/評價하지) 말고, 肉身에도, 믿음에도, 또 무엇에도 그 內部까지 돌아보아 考慮해주라.) (나 自身도 모든 것을 받지 않았느냐?)
(2016. 3. 21)[$]
+이 만드신 것들(ex. 우리 몸 만들어진 것, 其他)에 대해 (異常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肉身으로 엉버티며(/남과 對峙하며)) 우리는 꼬장 영감같이 뒷짐 지고 응시하므로, 마음이 무뎌서 +을 볼 수 없다. 또한 젠체하며 +과 同等한 체 하므로 +을 볼 수 없다.
(追加)(2016. 4. 16)
人工知能도 (이미 만들어져 있는) 腦의 科學을 模倣한다. 모든 科學이 +이 만드신 것을 硏究하고 배우며, 模倣한다. 그런데도 사람이 (이 모든 것을 創造하신, 周邊에 계신) +을 볼 수 없는 것은 앞에서 말한 理由 때문이다.(사람과의 對峙, 驕慢함.) (+은 우리 가까이 계시다.)
(2016. 3. 22) (省略 可能 贅言)
相對方이 (外部(/世上)에 대해) 謙遜하지 않으면 나도 기분 나쁘다. 나도 내가 弱한 줄 알고 謙遜히 하고 있는데···. *謙遜치 않으면 그 사람도 (社會生活에서) 틀리게 된다.* 相對方이 肉身으로(/無禮하게 함부로 대하며) 내게 옴은(/나를 대함은) 내 肉身을 侵害함이다.
(2016. 3. 28)
+의 뜻(사람을 사랑함) 外에는 할 일이(/生의 目標가) 없다.(卽 +나라를 이루기(/오게 하기) 위해 일함임.) 나는 금세 떠나가므로 時間이 얼마 남지 않는다. 거룩하고 崇嚴하게 되자.(cf. 三星 이미지)
+의 뜻은 自己를 버려 사랑하는 것.(/自己를 버려 거룩하게 되는 것.)
(2016. 3. 29)
(世上일은) 謙遜한 게 問題지 우리가 (많이만) 참는다고 일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참는 量이나 하는 일(量)은 되야 될 (客觀 世界) 일에 比해 아무 意味가 없으므로(/아무 턱도 안되므로) 이다. 그러므로 (自己를 謙遜히 버림으로) 外部(客觀)에 敏感하게(/잘 맞게) 對應하는 게(/虛失하지(/틀리지) 않게 對應하는 게) 더 重要하다.
(2016. 3. 30)[未考]
子息을 낳아 肉身으로 (世上에) 난다는 것은, 動物에게 닥치는 모든 일을 겪어야 된다는 것을 意味.(動物만으로서 理由 없는 試鍊 등.)
그리고 거기서 한편으로 +의 形像이 世上에 增加되는 기쁨(/좋음)을 누릴 수 있다.
(2016. 4. 1)
自己를 버려 사랑하여야 하나, 卽 참아야 하나, 거룩한 狀態에서는 참기가 쉬우나, 肉身만 느껴질 때는 참기가 (더) 힘들다. 日常生活이(/에서) 肉身만 느껴지는 것이 大部分의 境遇(/日常)이다.
(2016. 4. 2) [要訣:核心][$]
+의 뜻은 自己를 버려 사랑하는(/거룩하게 되는) 것.
自己를 버리면 (부드러운 끌림(/애틋함) 卽) 사랑이 느껴진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뻣뻣함은 (그대로) 客觀에 대한 뻣뻣함이 된다. 어느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잘못 社會生活 할 때 이렇게 되기 쉽지만, 對峙하고 自己를 내세우는 態度, 卽 (彼我間) 利를 따지는 남과의 對峙는 客觀에 대해 對峙·對抗함과 自己를 올림이 되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면xxx?xx 하는 일이 다 틀려버린다. 卽 客觀에 抵抗하면 (客觀 큰 힘에 의해) 自己가 망가진다.*
우리가 微賤한 사람과 하루를(/時間을) 보내도 (그것이 人生이듯이, 그 (모습)과 같이) 뻣뻣하지 않은 게 삶의 基本(마음)이(고 +의 마음이)다.
(2016. 4. 4)
人生에서의 意味는(/重要한 것은) (恒常 있고 變치 않는 것인) +을 아는(/알다 가는) 것이 問題지, 내 肉身이 사는 것이 問題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볼 수) 있는(/存在하는) +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의 本質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單純한) 生死를 超越한 것이다. *내 肉身은 變하나 +은 變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사람 중에서 우리의 本質로서) +을 알며 살아가며 죽고 사는 것은 些少한 일이 된다.(例로서, 義擧에 나서는 사람, 테러범.)**
世上일은 過去 趨勢를(/그들이 해온 일을) 보면 (그들이 할) 앞일을 알 수 있고, 또 世上事 앞에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여도(/못할 수 있지만)) 나는 (낮은/못난) 肉身뿐으로 된다.
+이 모든 사람을 救援하실지라도, 잘못하는 사람에 맞게 (그에 맞게) 罰을 주실 能力이 있으시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可能하시다.
죽음이 와도 두려워하거나 絶望해 하지 않는다. +이 새날을 準備하시는 것으로 알고, 믿고 바란다.
봄꽃들이 滿發해서 보이는 天上의 아름다움.-(안 지나가게 人間이) 잡을 수 없는 것은 잡을 수 없는 대로 두라. 그러면 天上의 아름다움이 더 高貴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2016. 4. 6)[$]
‘우리가 微賤한 사람과 하루를 보내도 그것이 人生이다.’ +은 우리에게 (우리 안에/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속 모습으로 마음속에, (生活 속에))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와 계시다.
(2016. 4. 7)
+의 뜻을 行하는 게, 목숨만 버리게(/浪費하게) 되고 전혀 안되면 (사람들이 아무도) (목숨을 버림으로서 +의 뜻을 行하려) 안 할 텐데, (+의 뜻을 행해서) 되는(/이루어지는) 때(/境遇)도 있다.
나는 모르고 行하나 남이 싫어하(게 느끼)는 것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알려주는 사람이 내게 先生이다.
(2016. 4. 10)
다른 사람하고는 肉體의 길이 다르다. 사이가 안 좋은 경우 (바로/확실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나도 내 肉體의 길을 갈뿐, (*肉體의 길이 달라*) 남을 相關할 수 없다. 밖의 거리에서 만나는 (一般 낯선) 사람도, 아는 사람도 모두 다 이렇다. (이래서 (사람에 대해 이렇게 對備해야 하므로) 내가 아무라도 남을 相關할 수 없다.(/는 理由이다.))
[未熟考]
우리가 本來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주신 動物的인 삶(/人生:그 가운데 즐거움과 健康과 衰退)만 해도 感之德之다. +이 더 以上 베풀어 주실 것이 없다.
(모든 몸 卽 餘他 動物, 女子, 몸이 다른 사람간에도 (動物로서 삶에는) 어떠한지(/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을지...(?))··· +이 하시는 일을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2016. 4. 29) (關聯 追加)
(또한 이와 같은 脈絡에서 보면,) 우리는 肉體가 살아가는 과정을 살다가는 것이다. 우리가 (社會生活에서 神이나 된 것처럼) 사람 마음에 큰 意味를 賦與할 것이 없다.(/하고 마음 졸일 必要가 없다.) 우리가 몸 따라 왔다가, ((+이 주신) 肉體가 사는 過程(/科程)을 살다가) 몸따라 가는 것이다.
(2016. 4. 10) [要訣][$]
사람이 (世上에서) +께 罰을 받게끔 되는 理由는 한마디로 +께 대한 驕慢함 때문이다. 남을 생각할 때 남이 世上에서 (괜히/턱없이) 理由 없는 (不當한)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自身의 (마음의) 내세움.(그리하여 +의 對敵이 됨.) 나는 나 自身이 바보같이 괴로움을 받는 것은 그럴 수 있으나, 남이 當하는 것은 義憤을 느낀다. (이것이 모두 +께 대한 驕慢함이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게 되는 原因은, (내 안의) +의 마음(/形像)을 自己 것으로 하여, 自己를 靈的인 不滅의 存在인 것처럼 하여 높이는 驕慢함 때문이다. 우리가 苦痛 받는 것(/事實)에 抵抗하면 肉身의 삶으로(/나쁜 길로) 더 나아가는 것밖에 없다.*
(2016. 4. 16)
人工知能도 (이미 만들어져 있는) 腦의 科學을 模倣한다. 모든 科學이 +이 만드신 것을 硏究하고 배우며, 模倣한다. 그런데도 사람이 (이 모든 것을 創造하신, 周邊에 계신) +을 볼 수 없는 것은 앞에서 말한 理由 때문이다.(사람과의 對峙, 驕慢함. cf. 2016. 3. 21) (+은 우리 가까이 계시다.)
人生이 아무런 意味도 없는데도, 現實的이고 뚜렷한 (싸우는, 버림받은, 남과 융화 못하는 것 같은) 獨立된 自我가 (느낌으로) 들 때가 있다.(남과 뚜렷이 隔離되고 對峙된 (自我) 느낌.) 그래서 (이것을 現實로 보고(/받고서)) +을 못 믿는다.
(能力도 없는 우리가 힘을 넘어 生으로, 度를 넘는) 客觀的인 일(/成果)을 이루는 것(ex. 硏究問題 풂)은 못해도 우리가 (努力하면 마음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追加)(2016. 6. 1)
우리가 힘이 안 닿는 것은 못하지 않느냐. 모든 것을 받은 處地에 무엇을 (한다고) 할 수 있으랴. 다만 우리의 意志가 닿는 限, 남에게 被害 끼치거나 남에게 나쁘게 안하려고 努力한다.
(2016. 4. 21)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이루는 것보다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더 價値있는 일이다. (왜 그럴까.)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生命을 누리는 것이므로, (아무 이룸이 없는 것 같으나,) (世上에서) 어떠한 (物理的인 일*) 成果를 이룸보다 더 크다. 그것은(/으로써) 우리 生命인 마음이 圓滑히 機能하며, 무엇을 이룰 수 있는 機會도 더 많이 주어진다. (일할 힘도 더 난다.(/생긴다.)) 또한 客觀 事實도 잘(/바로) 볼 수 있다.
일은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일을 괴롭게 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다.(能率도 없다.) 모든 사람이 일할 때 이와 같이 (남과 좋은 關係 속에서) 즐거이 (가볍게) 한다. 또한 適性에 맞는 사람에게는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
아무도 죽을 힘을 다해 일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칭찬할만 하지도 않다. 일은 함께하여 즐겁게 가볍게 하는 것이다.
(雜) (省略可能)
마음에서 거룩한 생각의 (理解의) 連結 過程이 끊어지면, 俗되게 된다. (거룩한) 생각이 안 가면(/안 닿으면) 肉身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한) 마음의 形體는 남으나 肉身만 느껴지므로 俗되게 (變形되게) 된다.) (생각 없이 肉身대로 살면(/남을 配慮 안하고 조심 안하면) +을 잊게 되고 남과 問題(/不和)가 생긴다.)
(追加)(2016. 5. 15)
人生이(/世上이) (해도 해도)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抛棄하고) 俗되게(/肉身으로) 墮落되게 된다.
(2016. 4. 23) (雜)
나는 내가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라를 (追)求할 일만 생각한다. 내가 무엇인가 생각하는(/따져보는) 것은 잘못된 肉身의 생각으로 가게 한다.
(2016. 4. 23) [重要, 要訣][$0]
내가 나를 投影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에 대한 생각은 내 생각일 뿐(/나 自身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을 投影해 보는 것이므로 내 自身(모습)이 그러한 것이다.
[重複] +에 대한 생각은 (事實은) 내 생각을 내가 거울같이 投影해(/비춰) 보는 거야. +은 (淡淡하고) zero base이다. (+은 (마음에 관해) 아무 것도 안하신다.) +에 대한 모든 것(/생각, 느낌)은 내가 (내 속에서) 이끌어(/만들어) 내는 것이다.(거룩함이든 俗됨이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다른 사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도 zero base이다. 事實上은 내가 (그 사람을 통해) 나 自身을 (거울같이 비춰)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사랑이나 俗됨이나 거룩함도 다 내 마음에서 이끌어낸 생각이다.(/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내가 옳다면 다른 사람의 나쁜 마음이 이해가 안돼야(/알 수 없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쁠 수는 있으나, 내 마음에 까지 影響을 미치지는 않아. 내 마음은 (나로 起因하여) 내가 갖는 것이다.*
(그런즉 (重要한 要諦는)) 우리가 努力하여 얼마나 좋은 것을 (自身의 마음에서)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있는 可能性이) +의 恩德(/恩惠)이다.
(내 마음에서 (내가) 무엇을 끄집어내던지 내 몫이다. 내가 내 속에서 어떤 것을 끄집어내느냐가 내 自身이다.)
(2016. 5. 9)(連續)
(삶이 괴로울지라도 그러나) 썩어질 것이 아픈 것 代身에 高貴한(/永遠한) 것(/(基本) 마음의 可能性(卽 +의 恩德))을 얻었으니 感謝하지 않은가.
外貌가 나쁜 사람은 그렇게 (일을 못하게) 될 수밖에 없고, (世上 모든 일이) +이 만드신 過程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을(/에 있어) +이 (周邊 與件을) 만드셨으니 그만이냐? 그러면 (잘못된) 이 모든 일이 +탓이고, +이 일부러 (우리를) 괴롭히시려고 巧妙히 만드셨느냐?
일을 못하는 사람과는 내가 함께 하면 된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함께 하느라고/도와주느라고) 더욱이 어려움을 겪으면 된다. (남을 돕는 等) 목숨을 버릴지라도 ((이 世上에서) 徹底하게 +께 外面 받아도 (*마음에 주신(/있는) 可能性으로 말미암아*)) 목숨 너머에 있는 +의 恩德을 바라는 것이다.
[重要, 要訣]끝.
(2016. 4. 28) (雜)
사람이 +이 定하신 以上은(/以外는) 할 수 없다. 즉 남을 위해 보살피고 희생하는 일. 다른 길로는 가도 되지도 않는다. 남을(/누군가를) 위해 돌보고 보살펴야(즉 사랑을 주는 對象이 있어야) 사람이 健全해진다.
(雜)
사람마다 다 +의 (穩全한) world이다. 卽 箇箇人에게서 +의 일이 (穩全하게) 이루어지는 곳. +이 여러 複製 +(의 世界)를 만드셨다.
(2016. 5. 3)
우리가 살다보면 餘他 生物(/動物), 작은 (微)生物들을 貴히 여기지 못하므로 (그런 (生存競爭의) 世界를 맞아) +을 믿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生命을 아끼고 위해야(/사랑해야) +을 알 수 있으므로 이다.) 또 별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試鍊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서(ex. 地震) (偶然에 따른 엄청난 試鍊(을 겪는 사람들) 앞에,) (그러한 苦難의 경우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 멀리하게 되고) +을 믿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2016. 5. 6)(雜)
한번밖에 없는 人生, 제대로 누리고 싶지 않은가? 이것을 制限하고 남의 生命을 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 남을 위해 自身(生命)을 制限하는 것은 바보짓일 수도 있다. 人生이 쓸데없고 (動物的이고 虛無하며) 곧 스러지므로 이다. 그러나 여기서 (自身만을 위하고 남을 害하는) 罪가 발생하고 +께 버림받은(/服從치 않으므로 멀어진) 사람이 될 수 있다.
“至極히 작은 것에 忠誠된 者는 큰 것에도 忠誠되고 至極히 작은 것에 不義한 者는 큰 것에도 不義하니라.” (눅16:10) 작은 일도 못하는데 큰 일을 할 수 있느냐?(가까운 사람의 (조그만, 몸의) 生命을 害하는데 큰 일을 할 수 있느냐?) 다 所用없는 일이다.
(雜)
世上일은 (무엇을 하려하면) 合理的으로 할 수밖에 없어. 客觀을 잘 보고 客觀에 맞추(어 하)는 것이 合理的인 것이다.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과 몸과 모든 것이 限定돼 있다는 것, 일하려면 남과 協助해야(/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合理的인 것이다.)
(2016. 5. 8) (要約)(社會生活(/人生살이)에서 가져야할 마음자세)[$]
다른 사람은 穩全한 +의 world이다.((+이 關心 가지시고 救援하고자 하시는) +의 事業(/일)이 이루어지는 곳.) cf.(2016. 4. 28)
-우리가 잘해야 +이 도와주시지 잘하지도 않는데 도와주시겠느냐? +이 사람을 無條件 도우시는 것이 아니다. 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벌 받는다.
-다른 사람들도 (或 外貌가 나빠도) (마음을 +의 形像대로 (제대로/바로) 가지며) 마음을 열고 싶은 所望이 있다.
(贅言)
우리가 몸 따라 왔다가 몸 따라 가는 것. 그 以上 생각할 것이 없다.
-主體性과 一貫性 속에서 無氣力해지는 것이 되기 쉽다. (일은 안되고 肉身만 느껴지는 것이 日常이다.)
-地圖(이 쓴 글)는 좋으나(/맞으나) 地圖를 갖고 가야만(行해야만) 이를(/다다를) 수 있다.
(雜)
+이 事物의 客觀도 만드시고 人間의 마음도 만드시고 이 兩者를 다 만드셨으니, (人間은) 어느 한 쪽으로 +을 알기(/理解하기) 어렵다.
(2016. 5. 11) (雜)
사람 만나는 모임이 +을 찾는 것을 빼앗기는 憤한(/고요한 平靜을 빼앗기는) 모임이 돼서는 안된다. 自己가 直接 行하거나 (맞)對應하지 않으면 나쁜 것이 (設或 내게 와도) 내게 붙지 않는다.
-아무리 남이 (明白히/뻔히) 잘못하고 내가 옳아도, 그래도 남을 攻擊하면(/壓迫하면) 남의 反撥을 가져온다.(또 남도 그 일을 그렇게 하게 된 데는 어쩔 수 없는 側面도 있다.) 그러면(/남의 反撥 공격을 받으면) (내가 암만 옳아도, 내가 弱하므로) 對處방법이 없다.(/어렵다.) 남에게 피할 데를(/갈 곳을) 열어주지 않고 (공격하거나 表面的으로) 공격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들과 살다보면 내가 立場을 分明히 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러다(/立場을 分明히 하려다) 마음이 變形되면 내가 망가진다. 사람은 물 흐르듯 사는 게 좋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戱弄을 받고 (또 그럼으로써) 生存競爭의 場에 내몰리면 (+을 잊을 위험이 있고) 마음을 (平安히) 갖기 힘들다.
(雜) [未熟考]
다른 사람이 내 것을 가져갈 때는 努力해서 가져가게 하라. 必要할 것이라고 豫想하고 알아서 먼저 주는 것은 世上에 浪費가 일어나고 나도 被害를 입는다.
(2016. 5. 12)
三星(李秉喆) (이미지) 雰圍氣는, 個人에게는 立場과 生死가(/길이) 다른 것을 分明히 하고, 全體에게 잘해주는(/잘하는) 것 같다.
(2016. 5. 15)
世上은 繼續 日新하므로(/與件이 變化하므로), 새로운 知識을(/與件을) 繼續 吸收할(/받아들일) 수 없으면 생활을(/무슨 일을/事業을) (維持)할 수 없어.
世上을 意味를 賦與하려하여 知識 있게, 意識 있게 또렷하게 (아름답게) 살려 目標를 갖다가, 마음에 變形이 오고 그 다음에 더 일이(世上 關係가/남과 關係하는 마음이) 안될 수 있다.
(+을 믿지 않고 自身 혼자만 근거해 遑荒히 살면)/ (포근한 마음으로) +을 믿지 않으면 人生이 가짜 現實로 보이고(/演劇, 虛像같이 보여 葛藤이 생기고), 社會生活 ID와 혼자 있을 때 ID(/自己自身)가 달라 混錯(/어지러움/마음의 混亂(/混沌))이 온다.
人生이(/世上이) (해도 해도)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抛棄하고) 俗되게(/肉身으로) 墮落되게 된다.
서로 害하지 않는 (平常의) 나라는(/사람關係는) 이미 +의 나라이다. +의 나라가 와도 (그것과) 別般 다르지 않다.
(2016. 5. 15) (人生의 基本 姿勢: 가, 나)[要訣][$0]
(가) 人間은 눈, 코, 귀, 입이 한군데 모인 (奇怪스런) +이 만드신 動物이다.(또 길다랗다.) 그런데 이것을 (當然히 여기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을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不信者인) 것과 같은 현상이다.(보아도 보지 못함.) +이 이것을(/이 外貌를) 神의 손길로 아름답게 絶妙하게 만드셨다.
(2016. 5. 16)(追加)
그러므로 (現實(/事實)이 위와 같으므로) 根本的으로는(元來는/原來는) 世上이 童話 같고 사람들이 (童話속 사람처럼) 가깝고 +이 가까운 理由이다.
(나) 世上을 만드신 +이 아픔도 함께 주셨다. 그래서 삶에서 아픔이 恒常 있다.
(2016. 5. 16)
(社會關係에 集中하고 對峙하므로) (위와 같은 被造物) 本質을 떠난 말투가 되면(/듣거나 하게 되면) +을 알기 어렵다. 또 마음의 主體性에 依存하면 (社會關係 속에서 있으며) +을 알기 어렵다.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에 갈 때는 (그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내가) +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고 기웃거린다.(/期待하며 간다.)
이 世上의 (各其 다른) (모든) 몸을 누군가는 맡아서 살아야 돼. 내가 다른 사람의 몸을 맡아서 산다고 생각해 보라. (마음으로) 남과 몸을 바꿔보자.
(2016. 5. 19) (宂言: 쓸데없는 말)
基督敎人의 잘못(가기 쉬운 것)은 +이 모든 사람에게 함께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便가른다. 그래서 잘못 가는 것이다.
(2016. 5. 20) (宂言) [未熟考]
+이 모든 不平等을 만드셨어도, (우리가) 不平等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가 問題지, 本質的으로 不平等이 問題가 아니야. +이 모든 몸을 各其 多樣하게 만드실지라도 (그렇게 날 수는 있지만) 그것도 感之德之다.
(宂言)
우리가 여러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사람의 本質은 +이시다. +이 여러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016. 5. 21) [世上을 사는 (가져야할) 基本 마음姿勢](ⅰ,ⅱ)[$]
ⅰ) 나도 아무 것도 아닌 肉體인데 +에 관한 뭔가가 存在하잖어. 다른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다.
[重複] 나도 다른 사람 눈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똑같은(/남과 別般 差異 없는) 肉體인데, +을 알 수 있는 뭔가(/+을 아는 ‘나’)가 存在한다. 다른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다.
ⅱ) 다른 사람도 +에 관한 뭔가가 存在하지만, 몸 따라 왔다가 몸 따라 가는 것.
[이것이 +이 (이와 같이) 世上을 만드신 基礎라고 할 수 있을까?](ⅰ,ⅱ)
ⅰ) 모든 生命은 (그가 받은) 生命이 (그들에게) 感謝한 것이다.(生命은 모든 生命에게 感謝한 것이다.)
아픔은 우리에게 恒常 주신 것이다. (아픔에도 不拘하고 (靈的인 價値(/+을 앎으)로 말미암아) 感謝한다.)
ⅱ) 사람이 어디까지 自己 意志로 되고 어디까지 +이 주신 與件으로 되는지(/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何如間 +이 모든 것을 만드셨어도 우리 意志까지는 强制하지 않으신다.
내가 平安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남에게 쫓기는 마음이 되면) 암만 높고 새로운 知識이 헛것이다.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世上에서(/남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이(/靈이) 아닌) 肉身뿐으로 돌릴 수 있다. +이 (내 마음에 能力으로(/影響으로)) 오지 않으시니까.
(2016. 5. 24)
人間밖에 모르는, 싸우고 對峙하는 TV뉴스나 프로들을 보면서 마음에 罪를 심으면(/박이게 하면) 안된다. 그 후에도 罪가 남는다.(/影響 미친다.)
+이 주신 아픔에는 (賦與받은 屬性上 쉽게 드는) 罪에서 脫皮해야 하는 어려움의 (忍耐를 要하는) 아픔도 있다.
어느 누구하고도 사이가 나빠지지 않도록 努力하라. 어느 작은 누구라도 怨聲을 사서는(/내게 不滿이 남아있는 狀況에서) 아무 일도 안된다. (結局 그 사람이 堪當이 안되며 내 마음이 不便해서 일이 안되고, 또 내가 잘못한 狀況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잘해주려고 하는데) 合理的 以上으로 내게 要求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再記](2016. 5. 15)[要訣][$0]
人間은 눈, 코, 귀, 입이 한군데 모인 (奇怪스런) +이 만드신 動物이다.(또 길다랗다.) 그런데 이것을 (當然히 여기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을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不信者인) 것과 같은 현상이다.(보아도 보지 못함.) +이 이것을(/이 外貌를) 神의 손길로 아름답게 絶妙하게 만드셨다.
[再記](2016. 5. 16)(追加)
그러므로 (現實(/事實)이 위와 같으므로) 根本的으로는(元來는/原來는) 世上이 童話 같고 사람들이 (童話속 사람처럼) 가깝고 +이 가까운 理由이다.
(2016. 5. 28)(追加) [綜合]
이와 같이 우리가 만들어졌다는 게 빤하므로, (+의 손길이 가까이 빤하므로) 헛되게 自身을 높이지 않는다.(cf. 그러므로 ‘本質을 떠난 말투(/態度)가 안되게’(2016. 5. 16), ‘TV보며 人間밖에 모르는 罪가 박이지 않게’(2016. 5. 24)). 사람과의 生死의 어두운 競爭 ((促急하게,) 쫓기듯) 안하고, 女子들의 큰 乳房 있음과 같이 우리는 누구나 世上일을 부드럽게 천천히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안에서 世上이 이렇다.) (cf. 人間밖에 모르는, 知識 있는 意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 어린이처럼 서로 和合한다.(2016. 5. 15)). 童話 속의 사람처럼 (되어) 사람들이 가깝고 +이 가깝게.
이는 조용히 차분한 마음이며, 安穩한 사랑 속에 있는 젊은 男女의 性品 같으며, 修道者가 十年 面壁 修道해서 찾고자 하던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며, 또한 記錄 내는 運動選手들이 (마음을 안정하고) 찾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마음이다.
+이 가까이 빤하므로, 人間이 받은 主體性 속에서 (일이 안되므로 자주 빠지는) 無氣力해지기 쉬운 것에서 收拾하여 앞으로 나가.
(2016. 5. 29)(追加)
(+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事實에 가려지고 사람이 안보여. (但只) +의 손길만 보이고 世上이 童話 같다. 사람이 보이면 마음이 激해지고 剛愎해진다.(/지고 自身을 높이고, 肉身의 競爭이 된다.) +의 손길만 보이는 위와 같은 마음狀態가 되면 나쁜 일이 있어도 (어린이같이 되어 +을 바랄 뿐), 罪로는 빠지지 않는다. 남의 罪도 理解가 안된다.(/내가 알 수 없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善惡果를 禁止하셨듯이, 他人에 대한 善惡判斷을 하지 않아야 罪로 빠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以前에 썼듯이, 無에서 有를 創造하신 奧妙함으로, 우리에게 아픔을 주실 수 있는 것도 +의 (奧妙하신) 權限이다. cf.(2015. 6. 4))
+의 罰이 살아있어. +의 罰이 現在的이다.(/며 언제라도 올 수 있다. 또 나중에도(/審判 때도) 올 수 있다.) 모르는 것은 +을 (잘/바로) 이해 못한 것이다.
이것을 이렇게 알아야 그래야 精神이 또렷해지고 (마음의) 빈구석이 채워진다. 우리가 (이 罰을) 堪當할 수 없지만 이것이 事實이다.
(+을 모르기 쉬운 이 世上에서) +을 찾는 것 自體도 賞을 주신다.(/아는(/보는) 것 自體가 큰 일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13:14)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마13:15)
“하나님께 나아가는 者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自己를 찾는 者들에게 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 6)
+의 뜻대로 求하면 +이 주신다고 聖經에 돼있다. +의 뜻-모든 사람의 救援을 위해 求하는 것.(/+나라를 求함.)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求하면 내가 施行하리라.” (요14:14)
“그의 뜻대로 무엇을 求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祈禱하고 求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모든 사람의 救援에 대해]
[創世記 42-45章]-요셉이 애굽에 食糧을 구하러 온, (自己를 버렸던) 모든 兄弟를 救함. [使徒行傳 27章]-바울의 탄 배가 難破했으나, 모두 섬에 到着하여 목숨을 건짐. 이것이 앞일의 譬喩가 아닌지, 이를 먼 指標삼아 (앞으로) 간다.
(2016. 6. 1)
우리가 +의 손길이 눈에 보여도 (사람이) 죽는다는 事實은 變치 않으며, 生活도 變化가 없다. (生活의 아픔도 달라지지 않는다.) 但只 +의 뜻대로 하여 (卽, 남에게 被害 끼치거나 나쁘게 안하려 함으로써) 마음의 價値를 增加시키려 할 뿐이다.
우리가 힘이 안 닿는 것은 못하지 않느냐. 모든 것을 받은 處地에 무엇을 (한다고) 할 수 있으랴. 다만 우리의 意志가 닿는 限, 남에게 被害 끼치거나 남에게 나쁘게 안하려고 努力한다.
잘못하는 사람들은 +이 罰(/審判)하실 것이다. 잘못하는 사람은 (그 잘못에 대해) +과 會計하게 하라.(/고 너는 相關하지 마라.) 내가 그 사람을 直接 非難하거나 공격하면 안된다.
[追加] (다른 사람이 或 잘못해도, 다른 사람은 +의 形像을 대표하므로) 나는 남을 評價(/審判)할 權限이 없으며, 또 남에게 나쁘게 하면 내 마음이 機能을 안하고, 남의 어쩔 수 없는 狀況에 대해서 내가 評價내리기 곤란하다.
[重複] +이 모든 사람을 救援하신다 해서 罰을 못주시는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그것을 (조금도) 看過하지 않고 (그에 맞게) 罰을 주실 能力이 있으시다.
(2016. 6. 2)
모임에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지 아니하면 마음이 偏狹되고 남과 (갈라짐의) 壁이 더 생긴다.(/커진다.) 그러므로 (마음이 圓滑히 機能을 안하고) 일할 能力도 더 줄어든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廢하면 모든 점에서 마이너스이다.(/損失이다.)
(2016. 6. 4) (宂言)(省略可能)
世上일이(/+이) 내게 無關하게 無心한 듯하기도 하고 (나를 괴롭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하다.
(2016. 6. 4)
이 世上은 잘못된 일이 解決되지 않고 未解決인 채로 끝이 난다.(cf. 2014. 12. 4). 잘못하면 허부적거리는 罪惡 속에서 生이 끝날 수 있다. 人間關係(本質)이 (서로) 이렇다.
過去時代 人間이 어떻게 無慘히 取扱받고 犧牲되었(고 버려졌)는지 우리는 그 (티끌) 一部도 모른다. 그러니 人間關係에서 人間의 本性(/處地)에 대해 많은 것을 看過하고 있다.(/모르는 채 現實의 삶을 살고 있다.)
(2016. 6. 5)
우리 일은 너무 苦悶할 것이 없다.(/하면 自身과 맞지 않는다. 이러면 해롭고, 苦悶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自身을 (너무 戀戀하지 않고) 가볍게 行動하는 것이 結局 (모든 境遇에서) 맞다. 왜냐하면 (우리의) 받은 마음이 永遠하신 +의 形像이지, 우리 本質은 微生物(뿐)이니까.
(2016. 6. 12)
이렇게 (삶이) 쓸데없고 일이 안되기는 죽을 때까지 똑같다.(/을 거야.)
(2016. 6. 12)[要訣][$]
다른 사람에게 일하는 것이 아닌(/일이 닿는(/連結되는) 것이 아닌) 혼자만의 마음의 들뜸(/즐거움)은 意味 없는 것 같다. 내 마음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사람에게 連結이 안되면(/일하는 것이 아니면) 虛無하다(/虛像이다/結局 쓸데없다.) 사람은 (自身의 모든 일이 헛되도) 生死에 관련된 일을 (解決/일)해야 마음이 (참으로) 便安하나,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게의 일이 내 몸 生死를 넘어선 곳의 일이다. 왜냐, 다른 사람은 내 몸 生命 너머에 있으므로 이다. 다른 사람에게 잘함은 내 몸 生死를 (便安히/좋게) 이룰 수 있는 일(/곳)이다.
남에게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남에게 (實際 關係가) 닿는 일을 해서 다른 사람과 關係를 만들어 나가라. 이는 卽 남에 대한 奉仕를 의미한다.(cf. 三星 이미지 및 일하는 方式). 可及的 더 여러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
다른 사람에 닿는 일도 (일하기에 멀고) 큰 일은 내가 못하지만, 가까운 작은 일부터 다른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일을(/다른 사람이 느끼므로 받을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러면 누구든지 이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를 (일에서 여러 가지로) 괴롭힌다고(/어렵게 한다고) 생각 드는 +이 바로 그, (온 世上을 만드신) +이시다. 그러니 잘못 생각하지 않게 마음을 잘(/바로) 가지라.
앞(길)이 안 보이는 世上을 살면서 그때마다 (恒常) +의 뜻을 생각하라. 우리를 世上에 두신 理由를 생각하라. 卽 +의 뜻은 (우리의) 마음의 價値를 增加시키는 것(이리라).
(2016. 6. 14)
世上에는(/일에는) 王道가 없다. 누구나 무슨 일에든 (맨땅에 헤딩하듯이 처음에는 괴롭고,) 肉體의 괴로움으로 해야 한다. 지름길로 갈 수 없다. cf.“그 險한 길을 걸어오면서 내가 얻은 하나의 結論은, 企業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이다.”<湖巖自傳> 지름길은 없으며, 또 그 길은 멀고 험하다.
(2016. 6. 15)
마음管理가 (實際的) 무슨 일을 이루는 데 첫째이다.(/于先 할 일이다.) 마음이 처져 있(고 (흐리멍덩하게 되어) 빛을 잃)으면 될 일도 안돼. 사람은 사람과의 關係를(/親分을) 갖는 것이 正常이다. 그 속에서 사는 것이다. 혼자서도 이런 마음에 못지않게 維持할 수 있으면(/힘내게 勇氣갖게 가면) 成功이다.(/많이 한 것이다.)
(2016. 6. 21)
사람에게는 그릇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差異가 난다. 끈기 있게, 멀리보고 하는 큰 그릇과 그렇지 못한 작은 그릇이 있다. 또한 充分한 力量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사람은 適性에 맞게 써야 한다. 내가 일할 意志가 있으면 (사람이 일할 能力이 있는지 없는지 關心 갖게 되고), 이런 것들이 눈여겨 보인다. 이것은(/사람의 適性과 그릇(/能力)은) (사람이 任意로) 어떻게 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2016. 6. 23)[$]
누구나 (主張)하는 말은 다 맞으나 그런데도 (現 世上)일이 풀리지(/解決되지) 않는 理由는, 問題는 (몸으로) 實踐하는 忍耐(를 못함)에 있다. 말이 重要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忍耐의 實踐이 重要하다.
(맞는) 말(하기)보다 일하는 實踐이 重要하나(/을 해야 世上이 變化되나), 大部分의 사람이(/境遇) 일을 못하는 理由는, 일을 하면 마음이 망가지기(/더 나빠지기) 때문. 그것을(/마음이 나빠지는(/荒廢되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을 해도 마음이 망가지지 않으면 그렇게(/일) 할 수 있어.
마음은 안 되는데(/가는데) (忍耐(/삶의 아픔으)로) 억지로 하려다 보면 마음이 망가진다.(/歪曲된다) *그래서 世上에서 모든 일이 하기 어렵고, 하는데 難關이 있다.* 이러므로 여기서(/마음 갖는 데서) 잘하는 사람이 (바로 現實에서) 일을 잘한다.(/일에서 成果를 낸다.)
(2016. 8. 3)(追加)
일을 못하는 건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다.(/일할 程度의 즐거움이 없다.) 마음은 안 되는데(/가는데) (忍耐(/삶의 아픔으)로) 억지로 하려다 보면 마음이 망가진다.(/歪曲된다) 그래서 일하는 것이 힘들다.
(2016. 6. 25)[$]
(살) 壽命을 다 살았다는 생각으로 두렵게 살며 마음을 비우라. 時間이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限定된 다시 못 올) 生을 消費하고 있는 것이다. 只今 生을 마쳐도 生에 아쉬움이나 (마음에) 不足함이 없게 되라. 그런 意味에서 只今의 生을 더 (알차게) 잘 보내야 한다.
(TV에서 (들이 틀어대는 廣告나 쓸데없는 프로), 그리고 世上에서 보이는 것은) 爆發할 것 같은 空虛한 시끄러움. 쓸데없는 외침과 慾心(의 騷音과 괴로움).
(2016. 7. 1)
事業(/會社 運營)을 하는 데는 미리 對備하는 것이 必要하다. 그런 일이 안 닥치면 (或 게으르고 그대로 두어도) 問題가 없겠지만, (제대로 하려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對備해야 事業을 (維持)할 수 있다.
(2016. 7. 3) [모든 (大部分) 사람이 사는 人生의 모습]
(外貌가 어떠하고 또 나빠도) 그렇게 그렇게 活潑하게 사는 것. 모든 사람에게 +의 形像은 다 있다. (그리고) 몸 따라 왔다가 몸 따라 가는 것.
(2016. 7. 5) [이것이 잘못 가는 原因이다./世上 紛亂(마음)의 始發點이다.][$]
-일을 (實際) 하느라고 (고집쓰다) 남과 다툼이 되든지, -卽 (받은) 主體性 속에서 +의 形像을 (特別히 自己에게만 있는) 自己 것같이 (꼬장부리듯, 젠체하듯) 한다. (自己는 남보다) +께 가까이 갈 것같이, 自己는 特別한 것같이 한다.
이는 +앞에 낮아지지 않음이며, 自身의 무척 弱함을 알(므로써, 謙遜하게 되)지 않음이다. *(自己의 삶이 自己에게 當然한 듯 (생각/驕慢)해서는(/살아가서는) 안된다.)*
(2016. 7. 8)
(意見이 맞지 않으면) (없어진 듯(/사라진 듯), 옛(/그) 사람을 戀戀해하지 않고) 옛(/그) 사람을 떠나고, (똑같은 +의 形像을 찾아(/이므로)) 繼續 새사람을 사귀는 것(이 世上살아가는 方法이다).
(2016. 7. 10) (cf. 2016. 6. 25에 追加)
只今 죽어도 아쉽지(/아쉬움이 남지) 않게 목숨(/生)을 다해 生을 살아야 한다.
(2016. 7. 10) (cf. 2016. 7. 3에 追加)
[우리가 指向하는 社會(모습).](제대로 살면 (바로) 이렇게 된다.)
모든 사람이 (마음, 生活的으로) 똑같은 것을 누리고, 모두 +나라를 이루기 위해 一助(/協助)하는 것(/모습).
(2016. 7. 13) (宂言: 쓸데없는 말)(省略可能)
<世上을 아름답게>-나의(/우리의) 目標.
이에는 科學的 硏究 등으로 사람의 生活을 潤澤하게, (이롭게,) 아름답게 하는 것도 包含한다. (+(나라)안에서 아름다운 世上을 追求하는 것임.) 그리고 世上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할 일이 많아) 우리의 時間이 不足하다. 時間을 浪費 없게 아껴 써야 한다.
(2016. 7. 14)
내가 +을 믿음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差異가 날까? (남을 對하는 데(/對人關係와), 自身을 維持하고 일하는 데에(/自身을 가지는 데에) 있어 남보다 나을까?) 누구나 남 앞에 自身 몸이 작다는 것을 알고, 또 사람사이에 즐겁게 지내야지 찌그리면 누가 좋아하느냐. 그래서 누구나 +없이도 對人關係에서 가볍게, 明朗하게, (또 自身이 弱하므로) 精誠껏 (하고) 禮를 갖추어 산다. 그래도 +이 속에 없으면, 自身을 크게 보아 마음에 괴로움, 葛藤, 挫折(/부딪침)이 생긴다.
(2016. 7. 17) (宂言)
(+ 아는) 마음을 sharp하게 해서 +을 더 잘 알게 되도록 하자. 人生의 追求할 (올바른) 目標가 이 (+을 더 잘 아는) 것밖에 없고, 이것이 正當한(/마땅한) 目標이다. 이로서 意識을 또렷하게, 차분하게 한다.
그래도 우리가 世上에 (몸 따라) 왔다가 (몸 따라) 가는 것이지, 卽 가볍게 사는 것이지, 重要한 意味를 賦與할 수 없다. 그러면(/意味를 賦與하려 하면) 틀려버린다.
(2016. 7. 19)
일이 잘되게 하는 方向이 世上事 모든 境遇에 맞는(/바른) 길이다.(/모든 것은 일이 잘되게 하는 方向과 같다.) 例로서 (혼자만으로 살려하지 않고) 남과 協助해야 하는 理由, (남과 (마음으로) 다투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해야 하는 것이 옳은 理由도 일이 잘되게 하는 方向과 같으므로 이다.
일은 自然스럽게 돼야지, 일을 (人爲的으로, 意圖的으로) 한다고 되지 않는다. 일을 하는 사람도 (할 때) 自然스럽게, 저절로 일이 되는 것이니 일을 못한다고 나무라거나, 못하는 사람을 낮게 評價할 일이 아니다. 社會 人間關係도 마찬가지다. 自然스럽게 돼야지, 意圖的으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自然스럽게 되는 것이 일이므로 能力 있는 것보다 謙遜하고 차분한 사람이 가장 일을 잘한다.
(2016. 7. 21) (宂言)
(무엇을 할지 몰라도) +나라를 求하는 것은 해야 한다. 왜냐 그것은 +의 뜻이며, 내게는 내 마음이 바로 機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6. 7. 22) (宂言)
사람과 壁이 생기지 않게(/自然스럽게 어울리도록) 恒常 操心하라.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사람의 能力이고 일할 能力이다. 왜냐 周邊 情報를 (잘/바로) 알 수 있으므로 이다. 또한 時間을 所重히 여길(/쓸) 수 있는 사람이 成功한다.
(2016. 7. 23)
내가 靈을 追求함 없이 처음부터 남에게 肉體만을 想定해 버리면 남이 내게 이러니저러니 트집 잡을(/말할) 것이 없다. 남들도 (그것이/肉體의 삶이) 그런 줄 알고 살아가니까.
(사람들을 볼 때) 靈이 안보이고 肉體만 보인다. 그러므로 (赤裸裸한) 肉體는 傷하기 쉬우므로 肉體 나름의 룰을 지켜야 돼. 이것이 世上에서의 일의 窮極이다. 해야 하고 操心해야 할 일의 全部이다.
(2016. 7. 24)
누구를 사귄다고 생각할 때 깊이 사귀면 (女子도 男子도) 누구나 그 모습은 똑같다. 그 누구라도 肉體가 前사람과 다른 모습일 뿐 그 本質 모습은 (사람에 相關없이) 前과 똑같이 내게 온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도 안 사귀어도 (그 될) 狀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깊이 사귄) 그와 사이가 안 좋아 내가 어려움을 當하게 될 때는 (그 狀況을) 對處하기 힘들다.
(2016. 7. 25)
+을 아는 (生活의) 즐거움은 죽음을 超越하는 것이다. 호스피스의 well-dying도 이렇게 하는 데 길이 있다. (+을 알므로) 이 우리에게 가까운 (生活의 마음,) 이것이 世上에서 참된 窮極의 즐거움이며, 이는 나라, 人種을 超越하여 같고, 世上에서 보이는 文化와 科學과 벌어지는 모든 일이 이 안(/이것 아래)에 있다.
(2016. 7. 29)
여러 사람이 +나라를 위하여 (役割이 分擔되어) 일하는 중에 한몫이 내 분깃이다. 여기서 조그맣게 일하며 +을 알다가는 것이다. 이것이 人生이다.
(2016. 7. 30) (雜)
다른 사람을 만남도 (各自는) 內部的으로 生死의 무서운 일을 겪고 만남이다. 平常的인 일이 平常的인 일이 아니다. 이것도 못하는 사람(/境遇/때)이 있다. 이것도 못하는 때는 그 어려움이란 말할 수 없이 크므로 이다.
(세상에서 모든 몸들이 다 우리에게 안겨졌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다 몸을 입은 罪밖에 없어. (이로서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몸에 相關없이 똑같음을 볼(/느낄) 수 있다. 이는 卽 +의 모습임.)
(2016. 7. 31)
깊이 사귀면 그 사람이 나빠도 +을 아는 것이니, (그것(/깊이 사귄 ‘나’ 받음) 自體로도) +께 感謝해야 한다.
(2016. 8. 1)
나와 關係도 없는 이런 일들(/(世上事) 現實/또 나와 關係없이 物理的으로 (體制的으로) 만들어진 곳). 마음 써서 이에 들어가서까지 罪를 짓느냐? 그러나 가만히 (나서지 않고) 있으면 내 周邊은 無이다. (나와 相關없이 만들어진) 이 現實에 들어가는 것外에 달리 할 일도 없다. +을 알기 위해 (現實에 들어가서) 勞動하는 것-이것이 삶의(/살아가야 하는) 形式이다.
(2016. 8. 2) (宂言)
우리가 다 (自身이 마음 같아도, 動物과 같이) 똥누고(라도) 살므로 (그것이 人生이므로, 남들과 彼此 낫고 못함이 없이) 아무도 (탓하거나) 나쁘게 하지 않는다.
[世上살이 方法](이렇게 해야 한다.)
-아무에게도 나쁘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잘못하는(/나쁜 일 하는) 사람은 世上에서 혼자(힘으로) 일하게 두어 (스스로) 배우게(/깨닫게) 한다.
(2016. 8. 3)
우리가 마음을 잘못 쓰면 (極히) 나쁜 길로(/世上으로도) 빠진다. (+이 만드신 世界일지라도 罪惡에 대한 防止策이 없다.) 이것도 認定한다.(/(世上에서) 본다.) 이것도 +이 만드신 世界이다. 罪짓지 않으려 하는 마음은 우리 속에서 무엇이냐.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은 이中에서(/우리의 마음가짐 중에서) 우리를 審判하시리라.(/하신다.)
世上 일이 豫定된(/미리 定해진) 것같이 過去의 豫言이 맞아도, +이 巧妙히, 되지도 않는 世上을 人間에게 주어 살게 하신 것 같아도, +께 맡긴다.(/우리가 그렇다고 罪를 지을 수는 없다.) +은 우리의 마음가짐 中에서 우리를 審判하신다.
(2016. 8. 8)
사람은 基本은 똑같고 몸(에서 느끼는 것)만 다른 것 아닐까. 男子도 女子도 그러하고, 餘他 動物도 어떤지 모르겠다.
(2016. 8. 9) (宂言)
世上은 (現實에서 肉慾을 좇는 그런) 肉身의 世界가 아니다. +이 계신 世界이다. 이런 잘못된 方式으로 世上을 (解釋하고) 그렇게 살려하면 안된다. 肉身의 (그러한) 길이 있을지라도, +안에서 모두가 (같이 잘 지내고) 和合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016. 8. 10)(追加)
(위와 비슷하게,) 歷史를 意識함으로(/歷史를 現實 實體로 認識하여) 世上을 크게 보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彼此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람과의 (따뜻한) 關係가 于先이다.
(2016. 8. 11)
“主는 가장 慈悲하시고 矜恤히 여기는 者시니라.” ···(약5:11) 이것을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2016. 8. 13)
+은 (죽은 이가 아니라) 살아계신 이이시다. 내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다. 卽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을 알고 계시다. 人間이 생각이 있는데 +이 생각이 없으시랴. (눈과 귀를 만드신 이가) 보고 듣지 않으시랴.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貴하니라.” (마10:30, 31)
“귀를 지으신 者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者가 보지 아니하시랴.” (詩94: 9)
우리를 보시는 +께 +나라를 위하여 求한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求하면 내가 施行하리라.” (요14:14)
“그의 뜻대로 무엇을 求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2016. 8. 16)(關聯 追加)
(그래도 前에도 말했지만, 이 世上에서) +은 zero base이다. 自己가 하는 것이다.(cf. 2016. 4. 23)
(2016. 8. 14) (贅言, 宂言)
몸으로만 하면 남과 關係도 없고 肉體뿐의 關係가 된다. 그러나 +이 주신 靈으로서 (비록 肉體 속이더라도 스스로 自己 길을 찾아) 살면 차분해질 수 있다.
+의 形像은 모든 사람에게 퍼져 있으며 恒常 있다. 그래서 (누구를 莫論하고) 이 속에서 산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사람사이에서 똑같은 雰圍氣가 연출되는 理由이다. 어디를 가도 (사람사이에) 노는 것 같은 다소 가까운 느낌이다.
다른 사람은 똑같다. 肉體나 外貌가 相關이 없다. 問題가(/相關) 되는 것은 (아픔을 주시는) +에 대한 나의 謙遜하느냐 아니냐이다.
(2016. 8. 19) [‘나’, 自己를 가짐에 대한 글임]
主體性과 肉身性이 함께 나타남으로 남에게 맞서 對應하여 自己 姿勢를 취하면 안된다.(便 가르듯 하는 ‘나’가 이와 함께 나타나면 안된다.)
(남에게 잘함으로) 그 外 아무 것도 얻는 것도 없지만 남에게 잘해주는 것을(/남과의 平和를) 樂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내가 肉身으로 弱하기 때문이다. 이 世上에서 아픔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賢明한 豫知(/叡智)이다.
(2016. 8. 20)
남의 (外貌가 어떠해도) 外貌에 相關없이 남과 肉身性을 追求하지 않고 靈的인 것을 追求해야 하는 理由는, 남에게 肉身性이 있을지라도 (그에게 느껴질 뿐) 내게는 影響을 미치지(/느껴지지) 않으며, 또 世上에서 남과 交流時 서로 靈的인 追求가 成立이 될 수 있으므로 이다. 肉身性은 너도 나도 그 속에서 살지 못하며, 또 靈的인 것을 追求해야 모두에게 希望이 있다.
卽, 다른 사람의(나쁜 마음먹는 사람까지도 包含해서) (남의 어떠한) 外貌에 相關없는 社會生活을 해야 하며, 여기에 모든 사람이 共通的으로 追求하는 길이 있다.(/보인다.)(cf. 三星이미지 方向(/와 비슷))
(2016. 8. 23)
世上이 괴롭다니까. 가도 가도, 이 일 넘어 저 일로 가도 괴롭다. 避하려 해봐야 所用없다. 이렇게 하는(/보는) 것이 (實際) 바로 보는 것이다. 이 괴로운 世上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만 남았다. 그러므로 이처럼 남들도 (나 못지않게) 사는 것이 괴로우니(/艱辛히 사는 것이니) 남에게 負擔 지우지 마라. (萬若 남에게 억지로 負擔지우면, 남들도 살기가 어려운(/艱辛히 사는) 만큼 안 좋은 것이 (그에게서) 내게로 되돌아온다.)
(2016. 8. 28) (宂言)
나중에는(/어떤 때는) 너무 便하니까 疑訝스러워. 이래도 되는가?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말도 안 되게(/너무 理致에 안 맞게/너무 不合理하게) 괴로울 때가 있다.
(宂言)
結婚을 하거나 안하거나, 子息을 낳거나 안 낳거나 그것보다 重要한 것이 (自身이, 우리가) +의 뜻을 行하는 것이다.
(世俗的인 追求나) 돈을 모으려 하기보다 +께 價値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러한 일)을 해야 한다.
(2016. 8. 29) (宂言)
生命이 다함을(/줄어져 감을) (살아가면서 現實에서) 받아들여야 돼. 지금 남은 것은 그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알차게 되는 그 길이 있으니 그 길로 努力해 보라. 모든 하는 일이 옳게 가는(/맞는) 길이(/마음가짐이) 있고, 또 마음이 充分히 價値있게 되는 길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가 肉身이므로 平素는 답답하고 如前하게 되기 쉽다.(/되는 것도 事實이다.))
(2016. 9. 1)
+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땅에 묻은 종처럼 ?外部에서 해주기를 期待하며?, 가만히 아무 일 안하고) 그대로 갖고 있는 사람이 되지 말라. 장사해서 달란트를 더 남긴 (착한) 종과 같이, 달란트(/+이 주신 마음/+의 形像)를 活用해 (뭔가) 일해야 한다. cf.(마25:14-30)
이 (달란트 卽) +의 形像은 完全하고 (우리 속에서 우리의) 肉身의 影響을 받지 아니하는 部分이다.(/아니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共通的인 完全한 모습이다. (또 +의 形像 속에 일하는(/느끼는) 느낌이 우리의 本質이고, 物理(/肉體)世界-몸의 世界는 하나의 形式인지 모른다.)
(2016. 9. 2)
우리가 (배운 것 없이 直感으로)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지. 卽 (우리는 일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받았을지라도(/卽 모든 條件이, +에 의해 全的으로 받은 대로 決定되지만) (그래도) 일해야 한다는 것. 또 이와 같이 그러할지라도(/모든 것을 받은 대로 일들이 決定될지라도) 나쁜 마음먹으면 안된다는 것. 또는 餘他 動物에게도 이유 없이 나쁘게 하면 안된다는 것.
우리가 (合當해서,) 資格이 있어 +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은 사람이 罪가 있어도, +을 찾는 자를 버리지 않고 賞을 주신다. 그러니 (自身이 어쩔 수 없는) 罪가 있어도 +을 찾고(/求하고) +나라를 求해야 한다.
“내게 오는 者는 내가 決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6:37) “洗禮요한의 때부터 至今까지 天國은 侵擄를 當하나니 侵擄하는 者는 빼앗느니라.” (마11:12)
(2016. 9. 3)
사랑은 두려움을, +의 罰을 이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穩全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요일4:18)
(2016. 9. 5)
人間은 모든 것을 받은 處地이기 때문에, (根本的으로) 일을 (반드시는/내 것으로) 하게 돼 있지 않아. 못해도 할 수 없는 處地이다. 生命이 줄어짐을 견디며 淡淡하게 넘어가야 한다. (일을 하다보면 이렇게 잘못되기 쉬우나,) 그악스럽게(/慾心스럽게) 일을 하려 하지 말고 이런 態度를 가져야 한다.
(2016. 9. 6) (贅言)
生命을 버린다고만(/自己를 괴롭게 한다고만) 해서 世上에서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이 되기 위한) 일과 삶의 根本은x?x 사람 사귐(/사람과 어울림)에 있으며, 그것은 生命을 누림이 된다. 卽 우리가 받은 +의 形像을 (억지로/强制로) 損傷을 주지 말고 일해야 한다. 世上 모든 일은 +의 形像을 보호하는 데 있으며, 그래야 肉體的으로도 모든 일이 잘된다.
(贅言)
+의 形像에 의한 理想을 지킴과 내 肉身이 于先 살아야 하는 現實이 相反되므로 사람이 삶에 葛藤이 있다.
(2016. 9. 7)[$]
(各 사람이) 몸이 다른 立場이 (다 한가지로/한 사람 마음같이) 理解가 돼. (모든 사람의 같은(/한 가지인) 立場을 알았으니) 내가 별 것이 없고, (모든 사람 중에서) 제대로 해야 돼. (人生이란) 이렇게 (별다르지 않게) 조용히 살다가는 것이다.
(2016. 9. 8)
일을 하는 目的은 一次는(/一旦은) (于先 無聊함으로) 죽지(/괴롭지) 않기 위해서. 二次는(/그 다음은) +나라를 求하는 것이다.
(2016. 9. 8)[$]
世上에 +나라를 求하는 데, 말이나 글은 效果가 制限的이고(/작거나 없고, 사람 任意대로 되어 틀릴 수 있으나) 몸의 行動으로 하는 것이 效果的이다.
말하는 것과 몸으로 하는 것은 다르다. 말은 쉬우나 몸으로 하는 것은 어렵다. 몸으로 하는 것을 해야 世上이 變化된다. 말을 하는 것은 自身을 내세움뿐이다. 몸으로 하는 것은 自身을 버리는 實踐이다.
(2016. 9. 10)
착한 마음씨(/+의 形像)의 이루 좋음은 말할 수가 없다. 이 世上에서 第一 좋은 것이다.
自身을 버리는 (나아가는, 進展된) 일을 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性格上) 남에게 나쁘게 하는 (마이너스的인) 일을 하지 말아야(/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性格이 安定돼 있고 일처리를 잘한다.)
(2016. 9. 11)
잘못하는 사람은 +이 審判하실 것이다. 잘못한다고 우리가 (그 사람을) 罪로 評價하거나 審判하면 안된다. 우리는 오직 善을 위해 努力(하고 +나라를 求)할 뿐이다. 나쁜 사람의 잘못이 問題가 안되는 것이, (나쁜 사람의 잘못 以前에도 原來) 우리는 世上에서 生命을 버리게 되어있다.
가장 싸고 生産을 많이 하도록 努力한다. (+이 주신) 世上은 남과의 競爭(이 根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께 바른 길이다.
+이 나를 사람으로 나게 하시고, 大韓民國에 나게 하시고, 서울에서 나게 하시고, 三淸洞에 살게 하시고, 또 男子로 나게 하시고 이만한 키에 이러한 容貌로 나게 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받은 處地에서 自身의 삶을 豊盛하게 하려 하느냐?(/自身의 利益을 貪하느냐?) 우습지 않느냐. 그러면 그렇지 않고 +께 잘하는 것은 무엇이냐.
(2016. 9. 14)
+나라를 求함이 (混亂한 마음 中에) 마음을 바로 하는 데 最適이다.
(2016. 9. 17)
人間이 +께 가는 것(/바로 하는 것) 말고 무슨 目標가 있으랴. 모든 것을 만드(시고 善이)신 +을 찾아야(/求해야) 마땅하다.
(追加)
肉身의 삶이 좋으냐? 사람이 +께 가는 것(/+나라를 求하는 것)말고 무엇 할 일이 있느냐.
(2016. 9. 17)
cf.(2016. 9. 2)[(우리는 일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받았을지라도 (그래도) 일해야 한다는 것.]
일에 대해 (내가 일 안하고 게으르게) 깜깜이로 남에게 맡기고 살지 말고, 自發的으로 積極的으로 主體的 人間으로 (일하여) 살자. 우리가 +은 아니지만 +처럼 (主體的으로) 일하는(/되는) 데 즐거움이 있다. (世上은/삶은) 남의 어떻게 하고가(/잘하고 못하고가) 問題가 아니다. 나의 일하는 즐거움 속에서 사람이 산다.
그래도(/主體的으로 살아도) (自己가 힘(/能力)이 없으므로) (남 앞에) 謙遜해야 한다. +이 안 주시면 참고 甘受해야 한다.
(2016. 9. 17) (重要)[$]
내 마음으로 하는 일은 내 썩어질 肉身과 함께 썩어질 일이다. 남에게 닿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物理的인 일은 남에게 닿고 남의 (마음의) 應答이 實際 오는 일이다. +의 形像, 卽 +이 오는 일이다. 즉 實際 진짜 일이(고 바른 일이)다. 또, 내 마음으로 하는 일은 任意로 잘못 가지만, 物理的인 일은 任意로 되지 않는다. 客觀 規程을 (어김없이/徹底히?) 따라야 한다. 物理的인 (客觀) 硏究뿐 아니라 사람 關係에 있어서도 物理的인 일을 하려면 그렇다. 世上 모든 것이 이 物理的인 일에 服屬한다. (이것만 잘 붙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제 마음만 依支하는 사람을 이기며 이것이 바른 길이다. 곧, 客觀에 따르는 사람이 客觀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支配함이다.)
(2016. 9. 21)
우리의 肉身에서의 삶은 肉身과 쓸모없음과 虛無만 느껴지는데 (이런데서 살아가느라고) 바등바등 기기 쉬운 거야.
(2016. 9. 22) (삶의 葛藤의 原因)
1) 사람에게 잘함(靈的 生命)↔내가 우선 살아야 함(肉體的 生命)
2) +이 (이 世上에서) 生命을 가져가시려 하면 (그대로) 받아야 하나 (버티고) 살아야(/살려 해야)하나.
3) (+의 뜻을 行하려는 自身의x?) 挑戰이냐?↔주제 넘는 짓이냐?
(2016. 9. 23) (重要)[$0]
누구를 만나든지, 어떠한 肉體를 만나든지 이러한 것은 다 形式이다. 살아가는, 그 속에서 生活하는 本質은 같다. 이 本質이 잘못 흘러가서는 안된다. 卽 사람 만났을 때 도움이 안되는 모임이 돼서는 안된다. 만남이 마음의 平靜을 오히려 妨害하는(/沮害하는/망가뜨리는) 것이 돼서는 안된다.
[敷衍] 이 本質을(/+의 形像을) 망가뜨리는 모임이 돼서는 안된다. 이 本質은 肉體에 相關없이 모두에게 같으며 卽 +의 形像이 모두에게 같다. 사람이 이것을 내세움으로 行하고, 우리 사람의 各各 動物로서의 本質은 이것이 不當하게 될 때 이것이 아님을 아픔을 겪으며 느끼는 그 部分이다. (肉體는 모두 形式이므로 cf. 사람들의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肉體는 形式이고 아무도 俗되지 않다.
-내 肉體도 形式이고 (남과 마찬가지로) 本質은 +이시다.
*-남과 여기가(/내가 屬한 이 사람들을) 다르다고 보는 것은 나의 俗됨이다. -나이기 때문에(/남과 다른 내 肉體) 나를 남과 다르게 보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다.*
(2016. 9. 26)
生活에서 (前과 똑같고) 마음이 (기름에 잠기듯 물에 잠기듯) 잠기는 것.-이것 때문에 +을 보지 못한다.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을 아는 데/느끼는 데/發見하는 데) 그렇다고 해서 +이 안 계신 것이 아니다.
일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길이 있다. (조그만 일로도) 궤도에 들면 어렵지 않다. 즐겁다. 이것은 (世上 모든 일(/與件)을 凌駕하며 모든 일에서) 이미 相當한 成果다. 사람 마음이(/意志가) (긍정적으로 좋은 方向으로) 변화된다.
+께 잘하는 것 말고 무슨 樂이 있느냐.
(2016. 9. 27)
사람이 自身의 責任下에 自身의 生命을 사는 것이므로 남들이 그에 대해 그의 外部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忠告도 안 받아들이면 할 수 없다. 이런 (自身의 生命을 自己가 責任지고 살아가는) 데서(/態度에서) 사람의 本質이(/特性이) 各各 나타난다.
아픈 것과 마음의 高尙함(/高貴함)은 다르다. (世上에서) 아프다고 마음의 高尙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파도 마음의 高尙함을 維持할 수 있는 사람을 +은 願하신다.
우리의 動物로서의 本質은 (우리 속에) 아픔을 느끼는 部分이고 그 外는 모두 +의 形像을 입은 것. 그러므로 모두 +의 形像(을 입고 있는 것)이므로 어느 사람에게도 함부로 할 수 없는 理由이다. 우리의 行함 自體가 +의 形像이며 우리의 動物的인 部分은 神經(/感覺) 部分이다. 사람의 本質을 評價하고 審判하려면, 이 動物的인 部分을 봐야 한다. +의 形像은 모든 사람에게 같고 (善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 한 것이 없다.
[追加]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잘못해도(/나쁜 일을 해도) 우리가 그를 직접 定罪하거나 非難하면, 우리 自身이 罪로 떨어지는 理由이다. 나 自身과 남의 +의 形像 앞에 謙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罪가 된다.
(2016. 9. 27)
客觀(/物理的) 일을 行하는 것과 사람과 사귐(/生命을 누림).-이 둘 다 옳으나, 그러나 이 두 相反된 것을 어떻게 맞추나. 몸을 받았으므로 몸이 살아야 살 수 있고, 또한 사람과의 사귐, 사랑함 없이도 마음이 機能을 안하므로 살 수 없다. 卽 사람은 몸도 살아야 하고, 사람과의 사귐도(/사랑도) 얻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軸을 다 하여야 한다.
(客觀 일은 몸이 살기 위한 手段이 되고 最終 目標는 사람 사귐(즉 生命 누림)에 있다.)
(2016. 9. 28)(追加) (바른 姿勢)[$0]
몸이 끝나면 내 生命도 없는(/몸과 함께 消滅하는) 건데, 몸以上으로 남에게 나아갈(/가서 도와주려 할) 必要는 없는 거야. (그것은 驕慢에 屬하고 世上일에서 失敗한다.)
(2016. 9. 29)(追加) (바른 姿勢)[$0]
(ex. 20世紀 初-2次大戰中 大虐殺(holocaust)) 사람과의 關係에 있어 개죽음을 當하지 마라. +과는 얘기가(/合理的 意思疏通이) 通하나 사람과는 사람하고는 (아무하고도 아무)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罪짓는 자는 +이 審判하실 것이다. 人間이 그를 審判하면 안된다. 人間의 罪짓는 本性을 믿으면 안된다. (사람 關係에서는) 恒常 마음을 풀지 말고 肉體의 負擔을 져야 한다. (恒常) 操心하고 밖을 敬畏하고 自身을 낮춰야 한다.
사는 것을 前提로 모든 것이 展開되는 것인데 죽으면 아무 것도 없어. 내 목숨은 아무 것하고도 바꿀 수 없어.(但, 이렇게만 살면 世俗化되고 삶의 迷路에 빠져버린다.) 사람하고는 對話가 안된다. 이것이 本質(/世上의 本性)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 개죽음을 當하지 않으려면 (바로) 物理的인(/客觀 일) 追求를 (사는 동안 熱心히) 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唯一한 方法이다. 사람은 몸의 支配를 받으므로 몸의 일(/客觀, 物理的인 일)을 붙드는 사람이 (모든 일에) 이긴다. 物理的인 일에 의해 모든 일이 판가름 난다. 卽 사람과는 對話가 안되므로, 이것을 미리 알고 客觀(/物理的인) 일을 (徹底히 準備)하며 나 혼자 +을 보다 나 혼자 살다가는 것이다. 이것이 人生(모습)이다.
그래도 靈的인 것이 生命이므로 靈的 追求(사람과 사귐), 善의 目的은 가져야 돼. 나에게 아무 도움이 안되는 사람이지만, 내가 肉體의 아픔을 겪으며, 善한 일을 해야 돼.
(2016. 10. 7)(追加) [사람과는 對話가 안 돼.]
-몸의 일(/物理的인 일/客觀 일)은 내 任意로 되지 않고 客觀 規程을 조금도 어김없이 따라야 한다.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의 誡命을 恒常 지키고 있음이다.
-또 몸의 일을 하는 것은 내가(/마음이) 높아지지 못한다.
-肉體(/몸으로) 일하는 것으로 사람을 알아. 그러면 사람이 모두 똑같다.(같은 方式으로 適應이(/待함이) 된다.)
-物理的인 일, 몸의 일을 하는 것이 (사람이) 主體的이 되는 것이다.
-+을 依支 안하고, 主體的이 되는 게 眞正으로 +의 뜻을 行함이다. (그것은 마음의 價値를 높임이다.)
-物理的인 (몸의) 일을 하는 게 마음의 變德에 의하지 않고 마음도 便安해. (cf. 三星 이미지/길)